요즈음 날씨가 참 변덕스럽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폭설로 공항이 마비되고 철도가 끊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네요.

모로코 북동부 지역에도 폭설이 내려 120cm나 온 지역이 있다고 합니다.

북동부 아틀라스 산맥 중간에 위치한 지역인데 참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카사블랑카에는 눈 대신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어제는 우박까지 쏟아지더군요. 오늘 아침은 반짝 개인 날씨입니다.

 

우기가 시작되어서 비가 자주 오니까 주변이 온통 초록으로 싱그럽게 살아 납니다.

고속도로 길가로는 야생화들이 아주 예쁘게 피어 났습니다.

 

오후쯤에 보슬비가 오락 가락 하더니 아름다운 쌍무지개 활짝 피었습니다.

무지개는 가끔 보는데 쌍무지개는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쌍무지개를 보면 좋은 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쌍지개를 보면 예쁜 짝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솔로이신 분들은 쌍무지개 사진 보시고 나머지 반쪽을 빨리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그리고 쌍무지개는 운수대통 이라고 도  한다고 하니 
이웃 여러분들, 이 쌍무지개 보시고 새해 좋은 일들, 행운이 더욱 더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이기회에 쌍무지개에 대해 잠시 몇가지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꿈을 해몽해놓은 자료를 보니까  다음 과 같은 자료 들이 있네요.

 

일반적으로, 높은 산 위에 무지개가 쌍으로 떠 있는 꿈
입학, 승진, 합격, 당선, 취득, 승리 등의 경사가 있고 입신출세한다는 명예가 생길 꿈입니다.

또는 두가지 일에 개입하게 되거나 사업을 벌이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태몽일 가능성이 큰 것 같은데, 쌍둥이를 낳게 된다는 꿈입니다

태몽 특유의 은은하게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면 태몽일 가능성이 큰데요,,, 아이들은

입학운, 승진운, 합격운이 모두 좋고 학자가 되거나 연구를 하는 아이들입니다..

 

장차 두가지 분야에서 ...두번에 걸쳐서 ...또는 두가지 큰 업적을 남기게 될

부귀공명하고 많은 사람들의 추앙과 지지를 한 몸에 받게 될

훌륭한 인물을 잉태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꿈입니다

이 꿈을 일반적인 풀이로 한다면 ...

집안에 경사스런 일이 생기고 사랑하는 애인을 맞이하게 될 징조이기도 하며

마음먹은 대로 소원성취하고 큰 대업을 쌓게 된다거나 ..

가족 구성원들이 입학, 승진, 합격, 당선, 자격취득, 승리 등의 경사가 있을 수 있고

명예를 얻고 출세를 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쌍무지개는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요?

 
물방울 속에서 진행하는 빛은 물방울 경계면에서 반사되고 굴절되면서 빛의 양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2차 무지개는 1차 무지개에 비해 빛의 양이 줄어든 상태이므로 1차 무지개보다 흐리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무지개가 만들어질 때는 대부분 쌍무지개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만 흐리게 나타나는 2차 무지개는 우리 눈에는 거의 관찰이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무지개를 선명히 볼 수 있을 때 쌍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무지개를 만드는 물방울의 크기가 크면 빛을 모으는 양도 커진다고 합니다. 대개 지표 부근의 물방울이 상층의 물방울보다 크기 때문에 더 많은 햇빛을 모을 수 있다고 하네요. 이런 경우 1차 무지개는 물론 진하게 보이고 2차 무지개도 쉽게 볼 수 있어 쌍무지개를 보는 행운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왼쪽에 쌍무지개가 보입니다.

2차 무지개는 물방울의 아랫 부분으로 입사해 나온 빛이 만들어지며 1차 무지개와는 달리 밑에서부터 빨주노초파남보의 순서로 보인다고 합니다.(사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2차 무지개는 물방울 속에서 두 번 반사하기 때문에 한 번 반사한 1차 무지개와 반대로 보라색 빛이 빨간색 빛의 바깥쪽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쌍무지개를 보면 색깔이 대칭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뭐 굳이 무지개를 보면서 과학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보고 아, 아름답구나 ! 하고 느끼면 되는 것 이지요.
무지개를 보면 누구나가 한가지씩은 추억이나 기억이 있을실 것입니다.

어릴적에는 넓은 하늘에 동그랗게 걸려 있는 무지개를 잡으러 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동화책에서 보았듯이 무지개를 사다리 삼아서 하늘로 올라 가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아무 것도 모르는 때라 정말 무지개를 잡을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긴" 별을 따다가 그대 품안에 고이 드리리" 라는 노랫말 처럼 정말 별을 따서 가지고 오는 줄 도 알았습니다.ㅎㅎ

그런데 무지개는 발주노초 파남보, 아주 예쁜색으로 황홀해 보였지만 잡으려고 다가 갈수록
 그 거리는 가까와지지 않더군요.
내가 한발 다가가는 만큼 무지개도 역시 한발 뒤로 물러 서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네 꿈과 이상이라는것, 그리고 자신이 갖고 싶은 소망 이런것들이 가까이 있는것 같지만 , 당장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것 처럼 느껴지지만 그리 쉽게 우리 손안에 들어오는게 아니라는것을 그때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쌍무지개가 반원 위쪽에서는 햇빛 때문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무지개의 형성 과정에 관한 탐구는 최초의 기상학 저서를 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의해서 기술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무지개의 반지름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공기 중에 흩어져 있는 물방울들이 증발되어 사라지면서 무지개가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보고 반경이 시간에 따라 변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이러한 관측 결과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항해하는 뱃머리에서 튀기는 물방울들에 의해 발생하는 무지개를 보고 무지개가 생기기 위해서는 물방울의 반대쪽 즉 관측자의 뒤쪽에 태양이 있어야 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후 13세기에 비첼로(Vitello)는 무지개는 광선이 물방울로 굴절해 들어감으로서 만들어진다고 설명하였고, 베이컨(Bacon)은 무지개는 구름 속의 물방울들이 구슬 모양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상이 휘어져서 색깔이 생긴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도미니스는 1차 무지개와 2차 무지개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1차 무지개는 빛이 물방울에 의해서 2회의 굴절과 1회의 반사에 의해서 형성되며, 2차 무지개는 2회의 굴절과 2회의 반사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간파하였습니다.

 
보너스로 아래에는 석양 모습을 몇가지 시차별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사원의 첨탑 너머로 석양이 들어갑니다.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은 태양도 휴식에 들어 갑니다.

길게 늘어선 전신주가 석양을 배웅합니다.

마지막 불꽃이 세다고 하던가요? 구름을 빨갛게 달구어 놓았습니다.

석양이 가로등에게 밤길 밝히는것을 양보 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석양을 몇컷 담아보았습니다.

 위에서 보셨다시피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차가운 겨울인것 같지만 벌써 초록의 물결과 예쁜 들꽃들이 싱그럽게 피어 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운의 쌍무지개 도 선물 해주고 있네요. 석양의 노을빛도 전문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 더 화려한 색채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자연의 선물을 많이 받은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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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을 처음으로 방문 하였을 때가 92년도 12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영국 하면 EPL로 인해 박지성,이영표(사우디 리그로 가 있지요)설기현,조원희,이청룡 선수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이지요.


영국 하면 런던포그버버리 코트 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비행기로 영국 히드로 공항까지 3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갈때는 비행기로 3시간 소요되는 길을 올 때는 3 4일이 소요 되었습니다.

 

12월의 런던은 명성답게 안개가 참 많이 그리고 자주 끼곤 하더군요. 요즘도 물론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런던에서 업무를 마친 다음에 차를 가지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런던 출발 할 때가 12 24, 유럽 전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들어가던 날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500 km 6시간이상이 소요 됩니다.

 

아침10시경 런던을 출발하여 도버해협을 페리선으로 건너왔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만 1시간 정도 소요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로 철도가 해저 터널로 연결이 된것 같더군요,어제 뉴스 보니 유로 철도도 폭설로 운항 중단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공항은 몰론 말 할것도 없고요, 지금 유럽도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네요.)


프랑스 깔레항에 도착해서 좌고우면 없이 바로 파리를 향해 출발 했습니다
.

칼레에서 파리까지는 잘 닥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파리를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더군요. 한국처럼 경부선 고속 도로에 올라서면 서울쪽 표시판만보고 달리면 서울이 나오는 격입니다.

 

프랑스는 고속도로가 파리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쫙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파리로 들어가기는 참 쉬운데 파리에서 빠져 오는 것은 좀 어렵더군요.

 

파리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 다 돼어 갑니다.

일단 주유소에서 개스를 채우고, 물론 당시에도 셀프 서비스입니다.

주유소 직원에게 행선지를 물으니 거의 영어를 못하더군요. 저 또한 당시에는 불어를 전혀 못했을 때 입니다.

 

당시 알고 지내던 파리 교민 회장님을 만나야 하는데 파리 도로 사정을 모르니 참 난감하더군요. 역시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에서 겨우 겨우 물어서 회장님댁을 찾아 간 기억이 있습니다.

파리는 도로사정이란 어찌 그리 일방 통행길이 많은지, 비슷비슷한 골목길에다가 구불 구불 일방 통행길에 잘못 들어가면 그야 말로 방향을 잃어 버리고 말더군요.

 

옆에 같이 동행한 일행이라도 있으면 지도 책을 보면서 차근차근히 찾아 갈 수도 있을 텐데  홀로 차를 몰고, 그것도 영국차량이라 핸들이 오른쪽에 달려 있는 차를 몰고서 생전 모르는 파리의 길을 찾아 간다 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물어 물어 밤늦게 회장님 댁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참 반갑게 맞이해 주시더군요. 저녁 늦게 찾아 갔는데 밤늦게 회장님 사모님께서 끓여주시던 김치 찌개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음식을 잘 접하지 못하는데 가끔 해외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으면 어찌 그리 반갑고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두분 모두 새해에도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1225일 성탄절 밤을 정신 없이 길 찾느라고 보내 파리의 야경을 그 당시에는 제대로 구경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에펠탑도 한번 보고 가야지 하는 엄두도 못 내었던 것 같습니다.

에펠탑은 나중에 아이들이랑 함께 방문해 보았습니다만ㅎㅎ

 

그 후에 가끔 파리를 방문하면 차를 가지고 파리 시내를 멋모르고 뛰어 들었던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다음날,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지도를 펼쳐 놓고 도상연습을 했습니다만 실제로 파리 시내에서 스페인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를 찾아 빠져 나가기가 참 힘들더군요.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까지는 1,300km 15시간여의 여정으로 오늘 달려야 합니다.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거쳐 보르도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 오는데 12월의 프랑스는 당시에 비가 참 많이 오더군요. 그래도 다행이 고속도로 상황이 좋아서 아무 무리 없이 잘 달렸습니다. 프랑스 국경선과 스페인 국경선은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 철책처럼 분단의 장벽이 있는게 아니더군요. 단지 톨케이트 빠져 나오면서 톨게이트 비용만 내면 되더군요. 차이는 당시엔 유로 통화가 없던 때라 영국 구간은 영국 파운드로, 프랑스 구간은 프랑으로 톨게이트 비용 내고 스페인 쪽으로 넘어 오면 스페인 구간은 페세타로 도로 사용료를 지불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톨게이트를 지날 때 마다 차량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관계로 매 톨게이트 마다 요금을 지불하거나 티켓을 꺼낼 때마다 차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일일이 요금 내고 티켓 을 뽑곤 했습니다. ㅎㅎ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도로 사정은 아주 양호합니다.

단지 스페인 국경지대에 피레네 산맥이 있습니다. 이 산맥 지역의 고속도로만 산악 지형 때문에 약간 구불구불 한 구간이 일부 있습니다만 이 지역을 벗어 나면 역시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마드리드 역시 파리와 마찬가지로 크리마스 연휴로 온통 휘황 찬란 합니다.

다음 날 마드리드 광장 및 시내를 간단히 둘러 보고 바로 차를 몰아 알제시라스 까지 가야 합니다. 700km 8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 세비야,카디즈를 거쳐 스페인의 최남단 알제시라스에 도착 하니 오후가 다 되었습니다.

 

알제시라스에서 모로코 북부 탄제까지 는 페리 보트를 타고 갑니다.

지부로울터 해협 14km 1시간 30여분 페리 보트를 타고 가면 모로코 입니다.

 

스페인을 들어 서면서부터 브레이크쪽에 이상이 있다는 싸인이 들어오더군요.

차가 너무 혹사 당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무시하고 알제시라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알제시라는 해안 지역이라 시내 길이 경사진곳이 많습니다.

좀 한적한 길을 내리막길을 가는데 커브길인데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잘 듣지를 않더군요. 커브를 틀지 못하고 그냥 앞으로 쳐박히다시피 내려 앉았습니다.

당시 앞쪽이 약간 낮은 공터라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그 곳이 절벽길이나 해얀 길이었으면 어떡하였나 하는 생각에 지금도 가끔 꿈속에 떠오르곤 하는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니다.

빨리 가는게 능사가 아니지요.

무조건 차부터 다시 점검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휴라 지정 정비소가 문을 여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타고 가던 차량이 BMW였는데 전 세계 어느 도시에 지정 차랑 정비소가 있더군요.  그래서 좋은 차를 타야 하는가 봅니다.

알제시라스에도 지정 정비소가 있어서 찾아 갔더니 마침 문을 열고 영업을 하더군요.

브레이크쪽이랑 그외  몇군데 정비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페리 티켓을 구매 하는데 당시 연말 연휴라 엄청난 차량들이 부두에 대기 하고 있더군요.  요즘에는 페리보트 운영을 여러 선사에서 자주 하지만 당시에는 몇대 운항을 하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질서 요원들도 없어서 그냥 차량 진입 하는 대로 부두로 들여 보내 더군요.

 

그러다가 그만 부두 중간에서 묶여 버렸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부두에서 하룻밤을 꼬박 차 안에서 새우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앞뒤로 차량들이 막혀 있어 오도 가도 못하고, 차를 나두고 그냥 나올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리보트만 타면 바로 모로코 집으로 갈수 있는데 배를 못타니 하는 수 없는 거지요.

그 당시는 젊었을 때라  혼자서도 여행을 자주 다녔었습니다만 완전히 생고생을 많이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첫배 조차도 못탈 정도로 제 앞쪽으로도 차가 많이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3번째 페리보트를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모로코에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로코에 집이 있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ㅎㅎ

탄제에서 카사블랑카 까지는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서 4시간이면 주파 합니다만 당시에는 왕복 2차선 길이라 500km의 거리를 거의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루트 였습니다.

그래도 밤늦게 카사블랑카에 잘 도착 하였습니다. (도시별 세부 사항은 나중에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장장 3,000km가 넘는, 34일간의 유럽 대륙 종주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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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원 앞쪽 도로 중간 의 작은 도심 공원

한국은 폭설이 내려 난리가 났다고 뉴스에 나오네요.

여러 이웃 분들 모두 무고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곳 카사블랑카에는 온종일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여기도 날씨가 아주 변덕 스럽네요. 비가 쏟아지면 아주 양동이로 퍼 붓듯이 오다가 한 2-3분 후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치곤 합니다. 하루로 3-4번 그런식으로 비가 오네요.
눈이 없는 지역이라 한국의 눈 소식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럽 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너무 눈이 많이 내려 고생 한다는 뉴스에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카사블랑카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라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교통이 혼잡스럽습니다.

모로코는 50%이상이 농업경제권이 차지하는 지역이라 매년 우기인 11월부터 2월까지 비가 많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경제의 한파의 여파가 요즈음에 와서야 모로코 시장을 타격하고 있는 상황 에서 비가 자주 오는 때문인지 시장에서 함께 일하는 거래선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생겼습니다.

   스페인 문화원쪽 로터리 모습입니다.

비가 귀한 지역이라 비가 많이 오면 자연적으로 농작물이 풍년이 듭니다.

수 많은 과일,야채,밀 등의 생산량에 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야채 나 과일등 생필품 가격이 상당히 안정 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기타 소모품들에 대한 소비가 자연적으로 늘어나서 시장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이지요.

 

   미국 대사관쪽 도로 모습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A 은행 본점 건물입니다.

시내에 업무 보러 나갔다가 사진 몇장을 찍어 보았습니다.

카사블랑카 시내 모습입니다.

 

   옛날 교회 건물이 보이네요. 지금은 교회로 사용 하지 않고 그림등의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날씨가 아주 변덕스럽습니다.

몇 분 간격으로 비가 왔다가 햇볓이 났다가 아주 오락 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중간에 오는 비도 아주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몇분 있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개이곤 합니다. 도통 가늠을 할 수 없는 날씨입니다. 비가 안오는 틈을 타서 사진을 몇장 찍어 봅니다.

시내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습니다.

새해들어 차량등록세를 납부하고 나오면서 찍어본 시내 풍경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이웃 분께서 카사블랑카가 아주 황량 하다고 하셔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시내 사진 몇가지를 올려 보았습니다.
차를 운전 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블로그에 올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뒷차가 아무리 빵빵 거려도 꿋꿋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ㅎㅎ 


유명한 관광지는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관계로 이번에는 따로 올리지 않습니다.
날씨 추운데 잠시나마 카사블랑카 시내 풍경 감상 하시면서 추위를 녹여 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날씨는 낮 최고 25도, 최저 18도 입니다. 실제 체감 온도는 더 낮습니다.조금 추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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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로코 대중 교통 수단인 택시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모로코에는 택시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시내에서 운행하는 일반택시(프띠택시-소형택시) 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택시는 각 도시 별로 색깔이 다릅니다.
카사블랑카는 붉은 색 택시입니다.
빨간색 소형차가 모두 택시입니다. 택시 지붕위에 짐 싣는 선반이 따로 있어서 박스나 가방등 부피 큰 짐들은 택시 지붕위에 싣고 다닙니다.(물론 추가로 짐 값을 받습니다.)

도로 좌우로 빨간색 소형차 역시 택시입니다.

수도인 라바트는 푸른색 택시입니다. 바로 옆 도시인 살레는 크림색 택시입니다. 이렇듯 도시별로 택시 색깔을 구별하여 일반 택시가 다른 도시에서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차별화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다른 도시로 택시가 갈 경우는 택시 마크(차량 위에 붙여 놓은 택시)를 떼어 내거나 천으로 가린채 운항을 합니다한국에서도 택시가 지역별로 구분은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외관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더군요.

 

이 택시에 관 한 일화를 하나 소개 해 보지요.

90년대 초반, 지금부터 20여년 전의 일입니다. 모든 회사 차량이 외근 을 나가고 없어서 급한 업무 처리를 위해 택시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근무를 할 때 입니다. 참 여러가지로 주변 여건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완전히 상전 벽해 입니다.

 

한참을 기다려서 겨우 택시를 잡아서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10여분 잘 가던 택시가 그만 타이어가 펑크가 나 버렸습니다.

지금도 모로코의 택시 수준이 여전히 문제가 많습니다만 당시에는 완전히 폐차 직전의 중고차들로 택시가 새차로 된게 하나도 없을 때 였습니다.

바쁘게 업무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만 도중에 펑크가 나버렸으니 참 난감하더군요. 당시는 지금처럼 핸드폰이 어디 있었나요. 연락도 못하고 ,,,ㅎㅎ

하는 수없이 길 위에서 한참을 기달려서 다른 택시를 잡아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바꿔 탄 택시는 바닦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도로가 헹하니 보이는 게 아닙니까, 그리고 그 구멍을 통해서 바람이 솔솔 들어 오더군요.

 

그런가 보다 하고 잘 타고 가다가 중간에 또 택시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참을 잘 가더니 그만 클러치가 부러져 버리는 게 아닙니까 !

택시 기사도 멋쩍은 듯이 허허 웃고 말더군요.

하루에 그것도 연달아서 택시를 타면서 길에서 참 우여곡절이 많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게 모로코 수도인 라바트에서 생긴 경험담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 정도의 택시 상황은 아닙니다. 엄청 발전이 되어 있지요.ㅎㅎ

 

여러분, 나귀택시라고 들어 보셨니요.

 오래된 도시에서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곳에는 나귀택시도 있습니다.

나귀를 이용하여 산악지역의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오래된 유서 깊은 옛 도시(구 도심-메디나)에서는 길이 좁고 미로처럼 되어 있어서 일반 차량이 들어 갈수가 없습니다. 이런 지역에서는 나귀나 말 등의 동물로 운송 수단을 대체하거나 직접 타고 다니기도 합니다.

 

또한 마차를 이용해서 도심 외곽에서는 아직도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끔 도심 지역에서도 마차가 들어오곤 하는데 포르셰나 벤츠, BMW등과 어울려 함께 도심을 누비기도 합니다. 특히 이 마차는 운송 수단으로도 사용 하지만 마라케시라는 도시에 가면 시내 관광용으로도 특별히 사용합니다.


어떤 지역에 가면 삼발이 오토바이를 온송 수단으로 사용 하는곳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회사에서 수입을 해서 현지에 판매를 하는 품목이기도 합니다. 이 삼발이 오토 바이는 화물 운송 용으로 대부분 사용 합니다만 교외 지역에 가면 역시 택시 대용으로 사람 운송하는데 많이 사용 됩니다.  

 

   퇴근 시간에 벤츠택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모로코에는 특별한 택시가 있습니다
.

택시 자체가 메르세데스 벤츠입니다. 즉 벤츠 택시입니다.

그랑 택시라고 하는 대형 택시 입니다. 이 그랑 택시는 장거리용 택시입니다.

시내에서 다른 교외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운행하는 장거리 시외 택시입니다.

탑승 인원은 기사 포함 7명까지 탑승 할 수 있습니다. 뒷 자석에 4, 조수석에 2명 해서 정원이 6명입니다.

 

  벤츠,그랑택시

 
물론 택시 요금도 거리에 따라 다르게 나옵니다
.

통상 택시 정류장에서 6명의 인원이 다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합니다.

바쁠 경우 6명의 요금을 다 내고 혼자 택시를 이용 할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전세 택시로도 이용 할 수 도 있습니다. 택시 다니는 운항루트 정해져 있습니다.

내리는 곳은 손님이 내리고 싶은 곳 어디서나 운항 루트 상에서 어디든지 내릴 수 있습니다.

 

   시내를 질주 하는 벤츠 ,그랑택시

처음에 모로코 왔을 때 아직 다른 도시의 거리 지리를 몰랐을 때는 그랑택시를 전세 해서 자주 다녔던 기억이 있습니다
.

 

   그랑택시(벤츠택시) 승강장,,,많은 벤츠 택시가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 하고 있습니다.

택시 정류장에서 그랑 택시 들이 일렬로 줄지어 손님을 기다립니다
.

그리고는 정원 6명이 다 찰 때까지 기다립니다.

바쁜 출퇴근 시간대나 명절,휴일 등에는 손님이 많아서 금방 금방 출발을 합니다만 평상시에는 6명 정원이 찰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늦게 출발 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바쁜 사람이 빈 자리 택시비용을 지불하면 바로 출발이 가능합니다.

조수석에 2명이 앉게 되어 있는데 역시 2명분의 비용을 지불하면 혼자서 편안하게 앉아서 갈 수 도 있습니다.

 

예전에 한번은 그랑택시를 타고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까지 간 적이 있었습니다.

고속 도로만 80km되는데 카사블랑카 시내에서 출발하여 라바트 시내까지  1시간 30분여분 소요 됩니다.

그런데 한참을 고속도로를 잘가던 택시가 서서히 도로의 대각선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기사를 보니 운전중에 졸고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소리를 막 질러 깨운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간담이 서늘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택시로  대중 교통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라는 그리 흔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항상 벤츠 택시를 보면서 참 묘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ㅎㅎ

 

모로코 뿐만이 아니고 중국에서도 택시관련 역시 유사한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경험은 나중에 기회 되면 한번 포스팅을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로코 방문하시면 메르세데스 벤츠를 바로 타실 수 있습니다.
카사블랑카 공항등  각  공항에는 벤츠 택시가 항상 대기 하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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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셨지요?

새해를 맞이하여 모로코에서도 오랜만에 떡국을 먹었습니다.

새해에 떡국을 먹어본 것이 수년 만에 처음입니다.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새해를 맞이하여 대사님께서 교민들을 초대 해주셨습니다.

주 모로코 한국 대사이신 최 재철 대사님께서는 작년에 부임을 하셔서 아주 정열적이고 활발하게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http://mar.mofat.go.kr/kor/af/mar/legation/greetings/index.jsp (모로코 대사관 홈피)

   해외에서 보는 태극기는 항상 가슴을 울리게 만듭니다.창공에 휘날리는 태극기도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도 개인적으로 여러분들도 역동적이고 활기찬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새해를 맞이하여 교민들을 특별히 초청하셔서 새해 떡국을 함께 들면서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대사님들이 모두 이렇듯 교민들과 가까이 하시고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주시는게 흔치 않은데 새해 들어 초대를 해주시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새해에 세배를 드려야지요.

아이들이 귀엽게 세배를 드립니다.

아이들도 대사님 내외분도 아주 행복해 하십니다.

 

모두들 즐겁게 떡국을 들면서 한 살 더 먹어감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살 더 먹어감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한 살 더 먹는 것을 반기는 것 같고 40십대 이후 부터는 한 살 더 먹는 것을 아쉬워 하는 분위기 입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전나무 꼭대기에 새해가 활짝 걸렸습니다.

세월의 연륜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정원수처럼, 한뼘 한뼘 자라 드높은 창공으로 우뚝 치솟아 있는 전나무처럼 어른들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로 떡국을 잘 먹고 정원을 들러 봅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참 조화롭게 배치 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느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소나기가 아주 힘차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아주 화창한 날씨입니다.

뉴스에 보니 한국은 아주 춥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로코는 아주 화창한 날씨가 새해를 반겨 주는 것 같습니다. 

   야구를 하는 모습이 마치 검도의 자세를 취하는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모두들 신이 났습니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참 천진난만 하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구놀이가 한창입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모처럼 야구 방망이를 잡고 공을 때려 봅니다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포수를 보시는 참사님 폼이 어째 좀 ,,,ㅎㅎㅎ

정원에 공작새 우리가 있어서 잠시 엿보기를 하였습니다
.

7개의 알 중에서 2개만 부화가 되어 암수 한마리씩 새끼가 태어 나서 키우다가

새끼 수컷은 크지 못하고 암컷만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아빠 공작, 엄마 공작, 새끼 공작(딸 공작) 이렇게 단촐 하게 살고 있습니다.

새끼가 자라서 벌써 엄마 공작 만 합니다.

아빠 공작은 꼬리가 아주 화려하고 길게 자라 있습니다.

활짝 꼬리를 펼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만 선뜩 아름다운 꼬리를 보여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진만 찍었습니다.

좁은 우리가 좀 답답해 보였지만 그래도 단란한 가족 공작을 가까이서 보는 아이들은 모두가 신기해 합니다. 

오늘은 새해 첫날,복잡한 생각들 모두 훌훌 던져 버리고 마냥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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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방학이고 출장 갔다 오느라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없었던 지라 지난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오후 215 시작하는 영화시간에 맞추어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휴일 오후라 차량들이 많이 밀려 있었습니다.

 

이 영화관은 카사블랑카에 해변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50여 개의 스크린이 설치 되어 있는 대형 영화 관입니다 

영화관 근처에서 찍은 영화관 전경입니다. 약간 옆에서 찍어 영화관 정면에 붙어 있는 영화관 이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차를 영화관 지하 주자창에 파킹을 하고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연인 끼리,가족 끼리 많이들 나와 있습니다.

 

현대 자동차 홍보 차량이 눈에 뜨입니다.

이곳에서도 우리나라 제품들이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전 제품 등 여러 제품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바타를 보자고 하더군요. “투일라이트“2012은 이미 엄마와 함께 보았다고 하네요. 아바타 3D 2시 15 상영인데 30분전인데도 모두 매진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하는 수없이 3 시작하는 2D로 보기로 하였습니다.

티켓을 예매하고 나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영화관 앞에 있는 스낵 식당에 들어 갔습니다. 

식당안 풍경을 찍어 보었습니다.

올리브 오일과 소금,후추, 케첩,겨자등이 가지런히 기본으로 테이블에 놓여 있습니다. 

메뉴 판으로 식탁을 깔아 주네요. 이곳은 대개 불어로 메뉴가 되어 있습니다.

스낵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제가 시킨 샌드 위치입니다.

닭고기 샌드위치인데 닭고기에 치즈,약간의 야채, 소스. 감자 튀김 이렇게 나옵니다.

 

샌드위치 빵이 너무 큽니다. 25cm는 넘는 대형 샌드위치입니다.

아이들은 빠니니를 시켜서 먹습니다. 빠니니 역시 샌드위치 일종입니다.

 

샌드위치가 너무 커서 제가 절반 정도 먹고 아들에게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아들이 받아서 잘 먹다가 도중에 그만 앞니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구멍 뚤린 아들의 앞니. 사진 촬영을 거부 하더니 나중에 자진해서 촬영에 임했습니다.

증거를 남겨야지요. ㅎㅎ
 

부러진 이빨을 찾아야 하는데 모두들 웃음보가 먼저 터져 버렸습니다.

이게 웃을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한참을 부러진 이빨을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이빨은 몇 개월 전에 아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앉아 있는데 반 친구들이 자기들 끼리 서로 장난을 치며 놀다가 지우개를 아들 쪽으로 던진 모양입니다. 지우개가 얼굴 정면으로 날라오자 반사신경적으로 얼굴을 숙여 피한다는 게 책상을 들이 받은 모양입니다. 이때 그만 앞니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학교 양호실에 가서 이빨을 우유 컵에 넣어서 가져와서는 칫과에 가서 붙였던 이빨입니다. 몇 개월을 잘 넘어 가나 싶었는데 단단한 샌드위치 빵을 씹는 바람에 다시 빠져 버렸네요.

 

부러진 이빨을 찾았으면 다시 붙였을 텐데 결국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다음날 칫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새로운 이빨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이빨이 일주일 후에 마련된다고 이빨 모형을 뜬 후에 일주일 후에 다시 칫과 가서 붙이기로 했습니다. 

치아가 빠지거나 부러졌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응급 처치를 해야 할까?

외상을 입어 입술과 잇몸이 다치는 경우 피가 나기 때문에 걱정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침착히 치아가 빠지거나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치아가 탈락했다면 즉시 응급처치를 해 치아를 살릴 수 있다.

치아의 뿌리부분(치근)에는 치근막이라는 막으로 싸여져 있다.

이 막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치아가 빠져 이물질이 묻었을 경우 식염수나 물을 사용해 30초 이내로 이물질만 살짝 헹궈내야 한다.

이때 손으로 문지르거나 다른 도구를 사용해 씻게 되면 치근막이 손상될 수 있다.

또 치근막은 건조한 상태에 약하기 때문에 구강외에서 30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빠진 치아를 끼워 넣어야한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놀라 조절이 되지 않으면 빨리 치과를 찾는게 상책이다. 치과를 찾아오는 동안 빠진 치아를 삼킬 수 있으므로 입술과 잇몸 사이에 끼워서 오면 삼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만약 우유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 우유속에 넣어서 치과에서 치료를 받는 방법도 있다.

치과에 도착하면 치과의사는 치아를 원래 위치에 끼우고 다른 치아와 함께 고정하여 치아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치아가 빠지자마자 원래 있던 골에 끼우면 치근막은 다시 살아난다. 치근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치아는 치아신경이 서서히 살아날 수도 있으니 정기적인 치과 치료와 관리로 치아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치아 외상 중에도 흔한 것이 치아가 부러지는 경우.

먼저 치관이 부러지면 부러진 조각을 찾아 보관한 뒤 가능한 빨리 치과의사를 찾아 치아를 붙여줘야 한다.

유치의 손상으로도 영구치에 변형이 생길 수 있고, 영구치는 말 그대로 평생 사용해야 하는 치아이므로 외상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켜 혼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보러 왔다가 그만 아들 이빨만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암튼 영화는 보러 가야지요.

팝콘하고 음료수가 빠질수 없지요. 

아바타에 대한 감상평은 여러 이웃분 들이 많이 포스팅 으로 올려 두셨더군요.

CG가 잘된 재미 있는 영화 였습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인디언들을 몰아 내었던 스토리와 비슷하게 전개 되는 것 같던데 영화에서 결국 나비들이 이기는 걸로 나오더군요. 시사 하는 바가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주변에 있는 야경을 몇가지 담아 보았습니다.

영화관 앞 사거리,,,오른쪽으로 쭉 가면 카사블랑카 해변이 나옵니다.
휴일이라 많은 차량들이 해변으로 들어 가고 있습니다.

카사블랑카 해변으로 들어 서면 이런 모습입니다.
오른쪽이 대서양으로 수영장,리조트 시설들이 있습니다.

대서양의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다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뜨이네요.

드넓은 바다가 해를 삼켜 버렸습니다.

새해에도 모든 분들 건안 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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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기하학, 천체과학, 의학이나 연금술처럼 서구 르네상스의 토대를 이루었던 이론과 사상들은 모두 아랍에서 전래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요즘 한창 즐기고 계시는 알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예나 지금이 똑같이 적용되고 있듯이 당시의 문화와 사상을 지배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군사적인 힘의 논리뿐만이 아니고 앞서나가는 철학,사상과 문화와 문명,과학 등의 진보가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이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 주변에 싶게 접할 수 있는 아랍어를 하나씩 기회 있을 때 마다 소개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대중 가요 중에 카스바의 여인”-윤 희상 에 나오는 카스바는 아랍어 입니다. 물론 국어 사전에도 나옵니다. 

국어 사전에 보면 카스바 [(아랍어)qaba] [명사] 아프리카 북부의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술탄이 있는 성 또는 건물. 나아가 주변 주거 지역까지도 이른다. 아랍 어로는 본래 성새(城塞)’를 뜻하며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것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카스바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오늘은 카스바 란 무엇인가에 대해 해부를 해보겠습니다.

 

모로코를 여행하다 보면 웅장한 대자연 속에 숨어있는 신비스러운 카스바(Kasbah)를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카스바는 아랍세계에서 진흙 벽돌로 만든 성채를 말하는데, 보통 언덕 위나 높은 산자락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카스바는 모로코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Kasbah
 (Arabic: "القصبة") or Qassabah 라고 하며 아랍어 입니다.

독특한 이슬람식 도시나 성채를 의미 합니다. 그리고 지방 토호(지역 유지)가 살던 곳으로 그 지역이 외부의 적으로 부터 침략을 당할 때에는 방어 성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카스바는 대개 창문이 없이 높은 벽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높은 언덕 꼭대기나 포구 입구에 세워져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카스바를 짓거나 소유하는 것은 그 지역의(그 지방 호족의) 부를 상징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 카스바가 있으며 이 카스바는 단지 외침에 대한 방어 용도만이 아니고 그 지역 주민의 생활공간이기도 합니다.


 넓은 뜻으로는 성채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 즉 성곽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며, 19세기 이후의 식민지시대에 북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서는 성곽도시의 주변에 새로운 유럽풍의 시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밀집된 아랍풍 시가지구와 넓은 대로를 가진 유럽풍 시가지구의 대조로 인하여, 유럽인은 성채의 유무에 관계 없이 아랍풍 시가지구를 포함한 옛 성곽도시 전체를 카스바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만 실제로 아랍인들은 아랍풍 시가지구를 카스바와 구별하여 메디나(medina:아랍어로 도시·시가지라는 뜻)라고 부릅니다. 즉 카스바는 성채,요새 의 의미가 강하고 실제적인 생활 공간인 도시는 메디나라고 부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카스바 중에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황량한 사막 위에 우뚝 솟은 요새도시

 

마라케시에서 꾸불꾸불 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아틀라스 산맥의 낭떠러지 산길을 넘어서 가면 사하라 사막 가기 전에 전통 모로코인 거주지로, 건조하고 황량한 암석 사막 위에 하늘을 찌를 듯이 견고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성채의 카스바가 하나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주변 풍경을 압도합니다. 그리고 카스바 앞쪽은 강이 흐르고 있어 절묘한 방어 요새로서의 기능을 잘 살리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에이트 벤핫두라는 카스바 입니다.

이 강에는 독충이 살고 있어서 강을 건널 때 발이 물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 되고 있습니다. 강의 수심이 많이 얕아져서 지금은 징검다리로 건너가게 되어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징검다리를 건너 가면서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이 요새도시는 서부 모로코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곳으로,보존 상태가 아주 좋아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무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이 촬영지로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베르베르족의 거주지인 이 요새도시는 11세기에 사막의 대상루트 상에 건설되어 낙타 행렬이 소금을 싣고 남쪽으로부터 사하라 사막을 건너 험준한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가 마라케시로 갔다가 상아,,노예 등을 싣고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한 곳입니다.

 지금은 옛날의 대상 루트의 요지의 번성함을 뒤로 한 채 쓸쓸히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과 건물들.

 

마을전체를 둘러싼 방어벽 네 모퉁이에는 요새 답게 망루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방어벽 안쪽에는 카스바라고 불리는 궁전과 성채를 겸한 대저택,일반인들의 주택,다락과 지하 저장고등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며 회당,학교,모스크,시장,양우리 등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공간도 엿 볼 수 있습니다. 건물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채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건물은 모두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의 굴레 때문에 여기 저기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만 관광자원으로 가치를 높이 산 모로코 정부가 복구공사를 진행해 오늘날에까지 잘 보존 되어 있습니다.

 

풍광 때문에 영화촬영지로 각광받아

 

암석사막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에이트 벤하두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건너편 강가에서 요새도시를 관망해보면 이국적인 카스바의 모습에 모두들 매료 됩니다. 그리고 요새 안에서 밖을 봐도 그림 같은 절경이 펼쳐집니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 입니다. 이곳에서 최초로 촬영을 한 영화는 <아라비아 로렌스>(1962)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나자렛 예수>(1977),<나일의 대모험>(1985),<007 리빙 데이라이트>

(1987),<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쿤둔>(1997),<미이라>(1999),<글래디에이터>(2000),<알렉산더>(2004)등 수많은 대작들이 이곳에서 촬영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것이 카스바 입니다.
담배연기 희미하게 서려 있는 카스바에서 외로움 달래려고 춤추는 슬픈 여인을 찾을려고 했다간 여러분들은 카스바의 미로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신 이웃 분들은 그럴 염려는 없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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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운 출장을 마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유럽의 대부분의 공항들이 폭설로 인해 공항이 마비가 되었다는 뉴스가 있어서 걱정을 했습니다만 다행이 오늘은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공항에서 보딩을 하는데 수화물은 카사블랑카까지 바로 부칩니다.

그리고 파리-카사블랑카 구간 보딩패스를 통상 인천서 바로 주는데 전산에서 뜨지를 않는다고 파리 공항에서 따로 받으라고 합니다.

 

암튼 서울-파리 보딩패스만 받아 들고 입국장으로 들어 갑니다.

간단한 보안검사를 마친 후에 패스포트 컨트롤 통과해서 면세점에서 드디어 카메라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이번 여름 휴가 때 떨어뜨려서 고장이 난 것을 아직 고치지를 못해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들을 그간 휴대폰사진으로 올리는 관계로 화질들이 좋지를 않았었는데 이젠 화질이 좀 좋게 나오겠네요.^^

당연히 시험 삼아 사진을 찍어 보아야지요.

 

파리까지 가는 대한 항공입니다. 에어 프랑스와 코드셰어로 에어프랑스 티켓으로 대한항공 비행기를 이용합니다. 

인천 공항 내부 탑승자 대기실입니다.

 

인천에서 파리 샤를 드골 공항 경유해서 카사블랑카 까지 다시 돌아 가는 여정입니다.

거의 온종일을 움직여 하는 시간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 간다는 자체에 가벼운 즐거움이 가슴속에 일어 납니다.

 

출장 나올 때는 어떻게 긴 일정을 소화해야 할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듭니다만 돌아가는 여정은 훨씬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것이 가족이라는 울타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12시간여의 비행 끝에 파리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파리공항은 한달 전에 비해 면세점 장식들이 더 화려해 졌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잠시 소개를 했습니다만 그때와는 그림이 좀 다릅니다. 

공항밖에는 보슬비 내리고 있습니다. 기온은 1, 기온이 더 내려가면 눈으로 바뀌겠지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하루전 까지만 해도 폭설로 공항 운항에 지장이 있다고 했는데 공항 활주로와 계기장 등은 모두 깔끔히 치워져 있습니다. 

카사블랑카 가는 보딩패스는 파리공항 환승 데스크에 가서 발급 받았습니다.

 탑승구는 F50, 21:00 출발

 

게이트 앞에서 지상 승무원에게 수화물이 비행기에 실렸는지 확인을 합니다.

가끔 수화물이 분실이 되거나 같은 비행기에 옮겨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항상 확인을 합니다. 승무원이 확인을 하는데 현재 수화물이 비행기로 이송 중이라고 합니다.

 

21:00 출발인데 30분정도 지연이 되네요.

드디어 카사블랑카로 출발 합니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말라가 상공을 지나 지브로울터 해협을 건너 모로코 북부 도시 탄제 상공을 거쳐 카사블랑카로 비행하는 코스인데 3시간여의 비행시간이 소요 됩니다.  날씨가 안 좋아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립니다만 안전하게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23:30분  

한 밤중이라 잘 보이지 않습니다만 비행기 창 밖으로 보이는 공항 전경을 담아 보았습니다.

카사블랑카도 보슬비가 내리고 있네요. 기온은 10.

 

여권 심사를 마치고 수화물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한참을 기달려도 가방이 나오지를 않습니다.

마지막 수화물 벨트가 돌아가는 것이 멈출 때 까지도 가방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분명히 파리 공항에서 수화물 확인을 했는데 이송 중이라고 한 것이 결국 같은 비행기에 실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 뿐 만이 아니고 주변에 여러 사람들의 짐이 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새벽 한시가 넘어 가고 있는데 ,,,,, 

수화물 누락 신고를 하러 신고 테스크를 가보니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엊그제 폭설로 인해 파리 공항의 수화물 분류 시스템이 문제가 생겨서 사람이 수작업으로 일일이 수화물 분리를 하는 바람에 많은 수화물이 제때 처리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 옆에 일본인 관광객 3명 도 가방이 오지 않은 모양입니다.

여행을 온 아가씨 2명과 청년입니다.

물어보니 나리타에서 출발 했다고 하더군요.

카사블랑카에서 오늘 밤을 묶고 마라케시로 이동 해야 한다고 하는데 가방이 오지 않아 큰일입니다.

저처럼 그나마 모든 일정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이면 다행이지만 출장 나가는 길이나 여행 나오는 첫 일정부터 가방이 없으면 정말 난감합니다.,

특히 모로코는 수화물이 나중에 들어와도 개별적으로 각각 배달을 해주지를 않고 직접 공항 수화물 보관소에 와서 찾아 가야 합니다.

일본 관광객들에게 짐을 공항까지 와서 직접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울쌍입니다.

 

여행 중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수하물로 보낸 짐이 도착지에서 파손되거나 지연 또는 분실되는 경우가 생길 수 가 있습니다. 나한테도 이런일이 발생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미리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수화물이 파손되거나 나오지 않는 경우

여러 구간을 탑승한 후에 분실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마지막에 탑승했던 항공사로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서는 꼭 서면으로 작성하여야 하며 구두상의 약속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다가는 나중에 증빙자료가 없어 보상처리에 있어 난감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꼭 서면으로 신고를 하고 보상을 요구하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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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보상금 제도 : Out of Pocket Expenses]
짐이 도착하지 않거나 지연되는 경우 도착지에 연고지가 없을 경우 1회에 한하여 필요한 일용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50불에서 최대 100불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받들 수 있다. 이것도 요청하는 사람한테만 주는 거지 그냥 가만 있으면 주지 않는다. 항공사에서 도착공항에 연고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본인이 애기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항공사에서 그냥 알아서 돈을 챙겨주지 않는다는 점을 잊지 말자.

 

수화물 누락 신고를 하고 나니 새벽 2가 다 되어 갑니다.

수화믈 신고서는 (PIR)입니다.

 

간단히 수화물 택 번호와 가방 종류를 알려주면 접수 번호가 적힌 접수증을 받는데 그게 PIR입니다.

 

다음날에 계속 연락을 해 보아도 가방 확인이 안되어서 공항으로 직접 가서 수화물 보관소에 들어가서 직접 일일히 확인을 하였으나 찾는 가방은 없고 MB 한마리가 왔다갔다 하는 통에 깜짝 놀랐습니다. ㅎㅎ

 

둘째날에도 여러 번 전화로 문의를 하였으나 확인이 안되다가 오후 늦게 서야 가방이 들어 왔다고 확인이 되어 또 공항 수화물 보관소에 가서 가방을 드디어 찾아 왔습니다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

- 공항에서 짐을 잃어 버렸다면 공항의 분실물 센터에 신고한 뒤, 항공사 직원들이 짐칸을 확인하도록 한다. 이때를 대비해 공항

   체크인 때 항공권에 붙여 준 꼬리표(Claim Tag)을 확인한다. 공항에서 짐을 찾지 못한 경우 항공사 서비스 센터에 즉시 신고한다.

- 만약을 위해 짐을 부칠 때에 가방에 나라이름, 주소, 전화번호, 직장이름 등이 적힌 이름표를 달아두는 것이 좋다.

- 열차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이용할 때는 되도록 짐은 직접 갖고 타도록 하고 짐을 예탁할 때에는 자신의 짐에 행선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표시해 둔다. 짐을 잃어버렸을 경우 예탁할 때 주는 보관증이나 수화물 꼬리표(Claim Tag)로 분실 센터에 신고하고,

   경찰서에서 분실증명서를 받아 둔다. 증명서는 귀국 후 보험회사에 제출할 때 필요하다.


 

여행을 자주 하시는 이웃 여러분들도 수화물 가방 도착이 지연되거나 분실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처 요령을 잘 알아 두시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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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아프리카에도 스케이트 장이 있다고 이전의 포스팅에서 말씀드렸지요.

월드 챔피언 김연아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었지요.

스키장이 있는 우케미단 정상

역시 아프리카에 스키장도 있습니다. 오늘은 스키장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이나 유럽처럼  리조트 시설이 현대화된 설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천연의 자연 조건을 이용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만끽 할수 있는 곳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틀라스의 스키장, 우케미단은 그래서 신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이스 신화의 아틀라스 신이 천형을 받아 지구를 들어 메고 있는 곳, 아틀라스 산은 북아프리카의 최고봉 인 투부칼(4,167m), 이미 앞전의 포스팅에 말씀 드렸지요. 이 아틀라스 신의 어깨쯤에 해당하는 곳이 우케미단 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아틀라스 신의 어깨에서 스키를 즐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스키장이 있는 우케미단은 해발 3,257m고도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스키장입니다. 가히 신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마라케시 에서 남쪽으로 74㎞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높은 산비탈에는 향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위로 고산 목초지가 발달해 있으며 낮은 산비탈에서는 방목이 널리 행해져 왔습니다. 이 산 중턱에는 베르베르족의 마을들이 여전히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서쪽의 사하라로부터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산정상 쪽에는 새하얀 눈 모자를 항상  쓰고 있어서 유럽에서, 혹은 모로코 현지인들 사이에  겨울철 스키장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한여름인6월부터-10월까지는  아틀라스를 트랙킹 하는데 아주 적당한 날씨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등산마니아들은 이 시기에 트랙킹을 즐기지요.

그러나 10월 중순 부터는 거센 눈보라가 빈발하기 때문에 정상 등정은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트랙킹보다는 스키 마니아들이 스키를 즐기러 많이 방문을 합니다. 

 정상에는 있는 스키장은 아주 경사가 심합니다. 전문가 코스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은 완만한 구릉에에서 스키를 즐기고 아주 잘타는 전문가 수준의 스키 마니아들은 자유롭게  스피드를 만끽하며 탑니다. 내려갈때는 좋은데 올라갈때는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되지요.세상의 이치가 그러고 보면 참 공평합니다.


초보자들도 쉽게 스키를 즐길수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잘들 넘어지면서도 재미있게 탑니다. 등성이쪽으로 민박집들이 보입니다.

 



호텔입니다
. 호텔 모습이 참 이채롭습니다.
피리미드 모습이지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지붕 모양이 경사가 심하게 지어 져 있습니다.
다른 모로코 전통 건물들은 거의대부분 사각형 지붕이지요.

       성수기에 가면 거의 방을 구하지 못합니다. 5성급 호텔인데도 만원입니다. 주변에 민박이나 소규모 호텔들이 있습니다.  


호텔안에서 본 바깥 전경입니다. 스키타고 들어와서 간단히 수영장에서 몸을 풀기도 합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좀 거칠어 보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천연 자연에 가까운 스키장도 개발의 바람에 비켜나지를 못할 모양입니다.
두바이 자본이(EMAAR) 들어와 리프트 설비및 스키장 시설등의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할 예정입니다. 거기에다가 11개 의 고급호텔 위락 시설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할  18홀 규모의 골프장도 건설 할 계획으로 있다고 합니다.  편리함과 상업성이 어울어져 천연의 자연 스키장도 그 아름다움을 놓치게 될것 같아 아쉽니다.

 

별장입니다.벽난로 피워놓고 언몸을 녹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 하면 참 좋겠지요.

대피소겸 한 겨울 시즌을 지내는 돌담집입니다. 성냥곽 같지요.



드높은 창공을 날아가는 독수리 가족입니다. 드높은 겨울 설산에도 먹을것이 있나 봅니다. 건강한 자연의 질서가  느껴집니다.

 

베르베르 마을 입니다. 척박해보이는 산중턱에서도 계단식 밭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네요.


선사시대 암벽화입니다. 당나귀,낙타,망치등 여러가지 암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것으로보아 이곳에 인류가 거주한 것이 선사시대 이전부터라고 볼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우케미단 정상은 1월에서 2월 사이에는 엄청 나게 많은 눈으로 덮혀 있습니다.  마라케시에서 74km떨어여 있으며 택시나 일반 승용차로 가면 2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어느나라 산이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지요. 특히 아틀라스 산을 올라 가는 길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왕복 2차선,어떤 곳은 1차선의 도로폭밖에 되지 않습니다. 차창밖은 천애의 절벽 낭떠러지, 오금이 저릴 지경입니다. 그래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 경관은 잠시나마 낭떠러지의 무서움을 잊게 해주지요.

 


눈이 많이 오는 한겨울에는 2,600 m의 낮은 골짜기 등성이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습니다만 낮은 구릉지에 눈이 녹아 없어지는 시기에는 3,250m의 정상까지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스키 리프트입니다.

올라갈때는 고도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3,257m정상에서 산아래쪽을 향해  내려 올때는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은 산 능선을 따라 산 정상을 보고 올라가기 때문에 고도감 을 느끼지 못합니다만 내려올 때는 산 아래쪽을 보고 내려 오기 때문에 3,000여 미터 고도에서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듭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타는데 주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사하라에 있는 스키장답게 스키를 즐기고 내려와서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수도 있는 날씨입니다. 호텔에있는 실내 수영장의 물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수 있지요.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면 마라케시 시내에 있는 야외 호텔 수영장에서는 실제로 야외에서 수영을 즐길수 있습니다.


사하라에서 낙타를 타고 가서 오아시스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들과 친해질수 가 있지요. 그후에 바로 아틀라스 산을 넘어 우케미단에서는 하얀 눈밭위에서 설원을 가르는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길수 있고 마라케시 시내에서는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수 있는곳 , 그곳이 바로 모로코 입니다.  여러분을 모로코로 초대합니다.(이러고 보니 꼭 모로코 관광청 홍보 카피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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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나라

이전에 블로그에 올린 "사막의 오아시스는 왜 붉은 도시 가 되었을까?" 에서 그냥 이름만 명기하고 넘어가서 좀 아쉬운 마음에 이번에 여기에 올렸습니다.

12세기 물레이 압달라흐만 왕이 왕비를 위해 세운 별궁입니다. 하얀 만년설이 덮힌 아틀라스 산맥 30km 앞에 위치하며 아틀라스 산맥에서 눈녹은 물을 지하 수로를 통해 인공 호수에 저장하면서 주변 올리부 농장과 과수원에 물을 공급 하는 관계용 인공 호수겸 별장입니다,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삼아 붉은 황톳빛 별궁이 풍부한 물이 고인 인공호수에 비쳐 절경을 이룹니다.

위 사진의 배경이 아틀라스 산맥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틀라스 산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아프리카에 아주 높은 산이 많이 있는 줄 아시나요?


탄자니아 북동부와  케냐 접경지대에 자리 잡은 킬리만자로스와힐리어로번쩍이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해발 5,895( 키보봉)입니다.

투부칼 정상(이곳이 아틀라스 신의 머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틀라스
길이 2,000km. 최고봉(투브칼) 4,165 m로 아주 높은 산입니다. 우리나라 백두산(2,750m)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설악산(1,708m)에 비교하면 참 높지요.
                  투부칼 정상(두부를 칼로 썰어 놓은것 같기도..ㅎㅎ)

최고봉인 정상 투브칼(4,165m)을 주봉으로 해발고도 4,000m 급 이상이 3개 이상에 이르는 등 평균 고도 해발 3,300m에 이르는  대()아틀라스가 중앙에 위치하며 그 북쪽에 중()아틀라스, 남쪽에 안티아틀라스라고 하는 소()아틀라스 등 세 산맥을 주체로 해서 그 남북으로 소산맥들이 이어진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이스 신화의 거인 아틀라스가 왜 모로코에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신 
아틀라스(Atlas)는 천계를 어지럽혀 그 죄로  제우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의 저주를 받아 세상의 끝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마치 거인의 신 아틀라스가 마치 하늘을 떠 받치는것 처럼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한 산이 모로코에 있는 아틀라스 산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고고학자인 Peter James <The Sunken Kingdom: The Atlantis Mistery Solved>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참고로 이책은 영국의 각종 평론지로부터 극찬을 받은 수작이다.)

 

아주 먼 옛날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미스테리는 근 2,400년 동안 학자와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티매우스와 크리티아스 Timaeus and Critias>라는 저서에서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재했으며 대지진과 홍수의 영향으로 하룻밤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틀란티스는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해협)의 서쪽에 있던 섬으로서, 이집트문명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으며 대략 10,000 전쯤에 찬란하게 번창하였는데 당시의 그리스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출처:
http://web2.kwangju.ac.kr/~jychoe/lecture/atlantis.htm )



 위 참고 자료에서 보다시피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모로코 북서부 해안지역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지역을 ‘아틀라스의 향토’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서양(atlantic ocean)과 아틀라스 산(Atlas Mt)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틀라스는 이아페토스클리메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에피메테우스의 형제이며 티탄신족()의 한 사람이다. 그 일족이 제우스와 싸워 패하자,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어깨로 천공()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고르곤을 퇴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찾아가 잠자리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 고르곤의 죽은 머리를 내보였는데 그것을 본 아틀라스는 놀라서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하는데, 대서양(Atlantic Ocean:아틀라스의 바다)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산중턱에 베르베르 마을(계단식 밭이 안타깝게 달려 있다)

아틀라스 산맥이 지중해에서 남쪽 사하라까지 쭉 뻗어 있어 모로코의 등 줄기같은 역활을 하며 모로코를 중앙으로 갈라놓아  내륙쪽은 사하라 사막입니다. 그래서 사하라 사막으로 부터 불어 오는 사막의 열풍을 병풍처럼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고  바다 쪽으로는 녹색이 많은 농경지 가 가능해서  대부분의 마을이나 큰 도시들이 지중해와 대서양 쪽 지역에서 번성하게 된것 같습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도시들도 대서양 연안지역쪽, 아틀라스 서쪽에 위치해서 발달해 있습니다.

여기까지 아틀라스 산맥이 모로코에 있게는 유래를 짚어 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그리이스 신화의 거인 아틀라스 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 (가제) 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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