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 아프리카)-아랍의 이후 지금이 비즈니스 기회

 

   아랍의 봄 이후 북부 아프리카국가들은 새로운 희망으로 점진적인 발전을 기약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심각한 경제난으로 촉발된 아랍의 봄은 경제발전과 실업률을 최소화함으로써 국내 정세의 안정화를 통한 대외 신인도 제고가 가장 시급한 관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현존하는 위험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지금이 북 아프리카 시장 진출할 타이밍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북 아프리카의 최신 경제 뉴스는 우울합니다. IMF World Bank 등 국제경제기구에 따르면 튀니지는 올해(2013) 예산적자가 32억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집트는 거의 9배에 달하는 290억달러에 달한다고 하네요. 여전히 이집트는 정정이 불안하여 혼란이 가중되어 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조속히 정상화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리비아의 예산적자는 GDP 4%선으로 예상되어 적자폭이 훨씬 긍정적입니다. 특히 리비아는 세계 4위의 석유 산유국이며 북아프리카에서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석유의 배럴당 가격이 향후 90-100 달러 정도를 상회 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에 따라 4% 선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모로코 경제성장률을 5.5%로 예상하고 있는바 그 이유로 모로코 주요 수출품인 인광석의 국제 가격 상승 및 파생품 수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관광산업의 부활이 무역적자 해소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로존의 채무위기 및 고유가에 따라 경제에 직접적인 충격이 고조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만 상대적으로 국내 정국의 안정과 치안의 안정으로 주변국들이 앓고 있는 아랍의 봄에서 한 발 비켜나 있는 상태입니다.

 

 

복잡한 정치적 전환(변화)는 지속적으로 공공의 신뢰를 약화시킵니다. 예전까지만 해도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국가들의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내분과 경제적인 혼란이 투자들을 위축시켜왔으나 IMF의 자료에 따르면 오히려 사하라 이남 지역의 국가들인 모리타니아,나이지리아,세네갈,남아공이 가시적으로 성장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장은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아랍의 봄으로 몸살을 겪고 있는 주변국들과는 달리 국내의 정치적인 안정요인에 따라 나타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아랍의 봄 이후 국가 지도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 총력을 기울려 오고 있으며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아랍의 봄 이후에 북아프리카국가에 외국자본의 투자가 점진적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만 지속적인 정정 불안, 폭탄 테러 등으로 서방의 많은 투자자들은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투자의지를 약화 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때에 이슬람 금융권의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현재 이 지역에서 이슬람 채권(SUKUK)의 가장 큰 손으로 이슬람채권(SUKUK)의 투자로 경제 성장의 동력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걸프 국가들에게 북부 아프리카권의 미개발 시장의 문호를 개방하는 효과를 가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카타르나 UAE등 다른 걸프 국가에서도 최근 르완다,잠비아, 유로본드이벤트처럼 이슬람 채권을 투자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Tip: 수쿠크(Sukuk)란 이슬람 국가에서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이다. 이슬람채권이라고도 한다. 이자를 금지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고안된 금융투자방식으로, 채권 발행 자금을 실물자산에 투자하여 그 수익을 배당금 형태로 투자자들에게 지급하게 된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이슬람 사회에서는 이자(리바, Riba)지급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다고 금융활동을 전혀 안할 수도 없다. 불로소득인 이자에 대한 대안으로 고안된 방법이 투자와 배당금 개념이다. 즉 이슬람 자본의 운영 원리는 기본적으로 투자를 하고 그것에 대한 배당금을 받는 방식이다.

예를들어 수쿠크의 발행자는 부동산 등의 자산을 특수목적 회사(SPC) 등에 임대한 뒤 여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배당금 혹은 리스료의 형식으로 지급하는 식이다.

원금의 경우는 훗날 실물자산을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재 매입하도록 하거나 일반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회수할 수 있다.

물론 사업자가 망하게 되면 채권 회수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해 진다. 즉 공동투자자의 개념이 강한 것이 수쿠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고유가 시대가 장기화 되면서 이슬람계 자본이 급증하면서 이를 유치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일례로 아시아의 대표적인 이슬람 국가는 일찍부터 '이슬람 금융허브'를 목표로 삼고 수쿠크 진흥을 금융정책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이슬람금융의 경우 경전의 요구대로 수익금의 2.5%를 자선금(자카트)이라는 이름으로 떼어 자선단체로 보내도록 의무화 되어있다.

이 때 통상 '하왈라'(Hawala)라는 송금방식을 사용하는데, 하왈라는 이슬람의 전통적 송금방식으로 송금즉시 근거서류들을 파기하도록 되어있어 송금처를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국제테러조직의 자금세탁과 테러자금 조달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수쿠크 금융의 적격성 여부는 샤리아위원회의 결정권한에 둔다. 이 샤리아위원회는 경제논리보다는 이슬람의 율법과 종교적 목적을 더욱 중시한다.

샤리아법에 저촉되는 경우라면 언제든지 자금을 회수한다. 이렇게 수쿠크 자금은 운영기간 내내 샤리아위원회의 감시와 감독을 받는, 통제하기 어려운 자금으로 잘못하면 해당 국가 금융주권이 침해당하는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추어봐서 향후 우리기업들의 북부 아프리카권 국가(마그리브 연합(AMU) : 모로코, 알제리,튀니지,리비아,모리타니아)의 진출은 유럽시장과 아프리카 시장등 제 3국 수출을 위한 전진기지로서 크나큰 잠재력과 지중해 무역권과 연계로 중계무역 기지로써의 지리적 이점이 아주 크다고 보여집니다.

 특히 마그립 연합국 및 아랍국가간의 무관세협약이 되어 있어 상호국가간의 수출입 통관시 관세혜택이 있어 물자의 원활한 수출입이 용이하며 유럽과는 유로1의 발효로 관세 장벽이 허물어 졌으며 미국과의 FTA 2004 6월 체결하여 2006 1월부터 발효되어 미국에도 무관세 수출입이 가능한 실정으로 대미 수출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 섬유업체들이 해외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부분에 있어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각 국가들이 지정학적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역내에 free zone(자유 무역지대)를 활성화하여 여러가지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바 대 미국, 대 유럽, 그리고 대 중동(아랍권) 그리고 대 아프리카국가들로의 중계무역기지나 생산거점으로의 활용은 적극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도 연구를 해보고 접근을 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랍의 봄 이후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좀 더 안정적인 생활을 바라는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와 거대한 요구와 더불어 심각한 재정적자는 새로 들어서는 정부 지도자들에게 무한정 시간을 주지는 않을 것 입니다. 때문에 조속한 정치적인 안정과 치안확보 및 국제기준에 맞는 엄격한 규제 개혁 및 개방으로 외국 투자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는바 북아프리카가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가 열리는 기회의 땅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심재석 (trustmaroc@hotmail.com)  2013년 7월10

 

 

Posted by casablanca
,

몇몇  블로그 이웃의 포스팅을 보니  보이스 피싱 사례가 참 많은 모양입니다.

 

얼마전 뉴스에도 보니 금융감독원을 사칭한 보이스 피싱으로 피해를 당할 뻔 한 고객을 은행 직원의 기지로 송금을 하기 전에 막아서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우체국 직원이 9천만원 '보이스피싱' 막아 화제

금융감독원 직원 사칭한 범인 "우체국 직원도 믿지 말라" 제촉
사연인 즉, 지난 11오전 1120께 여수선원우체국을 방문한 A(56·)는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정기예금 9,000만 원을 해약해 달라고 요구했다.
알고 보니 A 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았던 것.

이에 직원 강 씨는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해지를 요구하자 이상히 여겨 확인한 끝에 보이스 피싱으로 판단, 이체를 중지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개인금융 정보가 노출돼 보안장치를 해 준다거나 `금융기관직원들도 전화금융사기단과 같은 조직'이라면서 피해자를 속이는 등 수법이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의심스러운 전화를 받으면 바로 끊거나 상대방이 불러 준 계좌번호를 알아내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사례는 보이스 피싱(전화를 통한 사기). 전형적인 수법은, 한국에 있는 유학생 부모 나 가족에게 전화해서 자녀를 납치했다거나 혹은 교통사고 등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시 송금해야 자녀가 안전할 수 있다거나 합의를 봐야 구속을 면할 수 있다는 등 부모를 당황케 만들어 순간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비명소리를 들려주거나 발신전화번호를 해외현지번호로 교묘하게 위장하기까지 한다. 이럴 경우에도 부모들은 자녀와 직접통화를 요구하는 등 침착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아들을 감금하고 있으니 지금 즉시 3000만원을 송금하라. 그렇지 않으면 아들을 살해하겠다." 아니면 해외 출장을 간 남편을 감금하고 있으니 자금을 송금하라이런 전화도 역시 보이스 피싱으로 많이 오는 모양입니다.

 

누구나 사랑하는 가족이 납치ㆍ감금돼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 순간 이성을 잃고 공황 상태에 빠져 보이스피싱에 당하기 쉽습니다, 이런 전화를 받으면 경험이 풍부하고 전문성이 있는 경찰과 금융사 도움을 먼저 구하는 게 순서 라고 하네요 

여기서 보이스 피싱 사례가 많이 있지만 이런 유형은 보이스 피싱 만 있는게 아닙니다.팩스 피싱, 이 메일 피싱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받은 피싱 사례를 몇가지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인터넷이 안되던 때에는 팩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프리카 산유국에서 보내온 팩스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국 중앙 은행에 원유대금이 있는데 이 자금을 국외로 송금을 할려고 하는데 필요하니 외국에 있는 회사나 나 개인 은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금액 보통 2-3천만불 정도 합니다. 참 대단한 금액입니다.

그런데 이런 팩스에 속아 넘어 가는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유형은 먼저 송금 절차를 위해 필요하니 회사 서류와 은행등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내부적으로 송금 절차를 위해 로비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로비 자금으로 소규모 금액 3-5천불 정도를 요구 하거나 혹은 로비 선물이 필요하다고 카메라등의 선물을 보내 줄 것을 요구 합니다.

 

그리고는 현지를 방문해서 직접 중앙 은행에 가서 입금 된 자금을 확인해도 좋으니 현지 를 방문하라고 합니다.

현지를 방문하면 감금을 해서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습니다.

 

두번째 사례,

작년 9월부터 일본의 한 회사라고 하면서 국제 전화가 오기 시작하더군요.

투자 자문회사인데 소규모 자금을 투자해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관심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이 자꾸 바뀌면서 일주일에 한두번씩 전화가 계속 오더군요.

단기간에 40%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금액은 상관없이 10,000불 정도만 있으면 시작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설명도 그럴싸하게 하고 100% 투자 원금 보장 한다는 등 솔깃 하게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제 전화 번호는 알았는데 그리고 국제 전화를 수 십번씩 하면서 집요하게 연락이 오더군요.

 

그래서 회사 연락처, 홈페이지 등을 이메일로 알려 주면 방문해서 검토 하겠다고 했더니 그  이후로는 연락이 안오더군요,ㅎㅎㅎ

 

세번째 사례;

The U.K. National Lottery
12 Bridge Street,
Staines Middlesex TW18 4TP
United Kingdom.
 
Dear Winner,
Congratulations once again from all the staff here. For the avoidance
of doubt,your email address happen to be one of the emails chosen this quarter
from our new java-based software that randomly selects email addresses
from the web.Participants were selected from the registered email addresses in the
Public Key Server -- Index ,it was drawn from a pool of over 125,000 names in
this batch ,participants were taken from Europe, America, Asia, Australia,
New Zealand, Middle-East, parts of Africa, and North & South America as
part of our international promotions programme conducted to encourage
prospective overseas entries and the utilization of the internet.
So in order to verify your winnings,we need your winning and personal
data for record and verifications purposes.
Below is a verifications/data form which you are to fill and submit
after online verification; please fill accordingly so as to proceed with your
winnings.
Please attach a recent passport photograph (optional but advisable)
(For easy identification at payment point)
1. Reference Number:LSUK/4041/8161/066
2. Ticket number: 5649460054529922
3. Batch number:  R3/A312-59
4. Serial number: 5368/02
5. Amount won: £1,000,000.00
6. FULL NAMES:
7. DATE OF BIRTH:
8. SEX:
9. MARITAL STATUS:
10. CONTACT ADDRESS:
11. TELEPHONE NUMBER:
12. OCCUPATION:
13. BRIEF DESCRIPTION OF
COMPANY/INDIVIDUAL:
 Upon receipt of the duly requested data, you will receive the contact
information of the payment office to effect the release of your claim
in anyway you deem fit.
Have a nice day.
Mr. Tom Bleen
Phone: +4470457 15260

 

영국 로또 회사에서 로또 당첨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소리인가 보았더니 이메일주소가 당첨이 되었다는군요.ㅎㅎ

메일 보낸 보니 정식 서류 체계를 갖추고, 담당자 이름과 연락처 까지 있습니다.

 

이런 유형 역시 이메일 피싱입니다.

동일 건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역시 많더군요.

이건은 금액이 백만 파운드입니다. ㅎㅎㅎ

  금액이 로또 당첨 되었으니 수표를 보내겠다고 연락처를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표를 보낼 테니 수표 발송료를 보내라고 합니다. 물론 피싱입니다.

 

그리고 어떤때는 런던을 방문하여 직접 수령해가라고도 합니다.

영국 유학생들 중에 직접 방문해서 수령을 하려 갔으나 이런 저런 비용을 내라고 해서 유학비용까지 털린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조심 해야 합니다.

 

네번째 사례: 어느 중동 부호 미망인의 이메일

최근에 이메일입니다.

월드컵을 개최하는 남아 공화국에서 이메일입니다.

자신이 중동의 부호의 미망인이라고 하네요. 자기 남편이 돌아가시고 유산이 2천만불 은행에 있다고 합니다.

유산을 기부하고 싶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좋은일에 유산을 쓰겠다고 까지 합니다.  ㅎㅎㅎ 물론 피싱입니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국내든 국제적이든 수많은 보이스 피싱, 팩스,혹은 이메일 피싱이 많습니다.

앞으로 블로그 피싱,트위터 피싱 등등 진화된 피싱의 형태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 됩니다.

자신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금액을 가지고 유혹하는 메일이나 전화 받으시면 바로 관심을 접는게 좋습니다. 이런 메일이나 전화에 응대를 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말려 들어가는수가 있습니다.주의를 하셔야 겠습니다.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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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옛날 추억을 한번 유추 해 볼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 이야기 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종합상사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제가 입사 한 부서가 무역부 수출1, 그야말로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의 최 일선 현장을 담당하는 부서였습니다. 당시 저에게 할당된 지역이 중동 아프리카였습니다.

 

당시만해도 중동,아프리카 지역국가들이 아직 우리 나라와 수교가 안된 곳도 많을 정도로  아주 열악한 지역이었지요. 물론 인터넷도 안되던 시대입니다.ㅎㅎ

텔렉스와, 전화, 팩스로 모든 통신을 주고 받던 시기였습니다.

매일 매일 무역의 최 일선에서 밤낮없이 정말 정신 없이 열심히 일을 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일을 한다고 회사에서 따로 야근 수당 더 주고,고과 평점을 매기고 실적기준으로 보너스를 따로 주던 그런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히 고급 노동력 착취를 당했던 것 같습니다.ㅎㅎ

  
여러분,아프리카 앙골라 라는 국가 아시지요.

그당시 우리나라와 수교도 되지 않은 상태의 먼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였습니다. 북한과는 76 4월 부터 정식 수교가 되어 있었습니다90년대 역시 한창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심할 때 였습니다.

당시 앙골라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부 입찰 오더를 처음부터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부군쪽에 들어가는 군장비에 관한 비즈니스 였습니다. 앙골라 정부에서 결재대금으로 원유를 주겠다고 해서 회사 차원에서 물물교환을 할 수가 없는 관계로 프랑스에 있는 한 회사와 조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 회사에서 앙골라 원유를 가져가고 대신 한국에는 프랑스 회사가 신용장으로 대금 결재를 하는 시스템으로 업무 정리가 일단 되었습니다.

      앙골라 중앙은행(포루투갈 풍의 건물이 웅장해 보입니다.)

 

최종 오더 수주를 위해 앙골라 현지로 오라는 앙골라 정부쪽의 요청이 떨어 졌습니다.

한창 내전이 일어나서 정정이 불안한 곳인데 직접 들어가서 최종 오더 수주를 결정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들어갈 엄두를 못 내었을 텐데 당시는 젊은 혈기에 아무 주저 없이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도 전혀 말리지를 않더군요. ㅎㅎ   먼저 비자를 받기 위해 황열병 백신 주사를 접종을 한 다음에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미수교 국가라 대사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지 정부에 문의를 하였더니 국내 한 원양어선 회사를 소개 시켜 주더군요. (I 회사). 이 회사가 앙골라 현지에서 원양 어선단을 관리를 하기 위해 직원이 나가 있어서 현지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회사를 통해서 비자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암튼 우여곡절끝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출장예정 기간은 일주일.

김포출발-파리경유-루완다(앙골라 수도)로 가는 긴 여정이 었습니다.

2008년도의 르완다 모습

 

루완다

앙골라의 수도이며 국내 최대의 도시이자 2번째로 번화한 항구이다. 1576년 파울루 디아스 데 노바이스가 세운 뒤 1627년 식민지의 행정중심지가 되었고, 당시 브라질로 노예를 보내는 주요수출항이었다.  주요수출품은 원유,커피·목화·다이아몬드·철·소금 등이다.

지금은 초고층 빌딩들과 넓은 대로가 한층 현대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만 20여전만해도

내전으로 신음하던 병든 도시였습니다.

 

포르투갈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무장 저항운동이 1930년까지 계속되었다. 포르투갈 통치기간 동안에는 사실상 토착민을 위한 경제 개발의 기회가 매우 적었으며, 20세기까지도 강제노동이 지속되었고 모든 투자는 포르투갈의 이익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1950년대 들어 민족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MPLA의 지지기반은 음분두족이었으며, 이 정당이 앙골라 독립투쟁의 주요세력으로 활동했다. 그외에도 종족이나 종교·이념에 기반을 둔 단체들이 형성되었다. 독립투쟁은 196070년대에 절정에 달해 1975년 마침내 포르투갈군이 앙골라에서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곧이어 각 분파간의 싸움이 내란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소련과 쿠바의 도움을 받아 MPLA가 앙골라 대부분 지역을 통치하게 되었으나, 서방국가가 지원하고 오빔분두족이 주축이 된 게릴라 조직 UNITA와의 산발적인 전투가 지속되었다. 나미비아의 지위에 관한 협정에 의해 1989년 쿠바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내전이 장기적으로 지속 되던 때 전쟁터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르완다 공항에 도착 해서 수화물을 찾아서 나가는데 세관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가지고 간 수화물이 온통 군대물품으로 가득찬 더블백 이었습니다. 그래서 세관에서 의심의 눈초리로 검사를 하게 된 것 이지요.

따로 공항 한쪽에 있는 외딴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하나 하나 일일이 물건을 꺼내어서 펼쳐 놓더니 완전히 심문하는 분위기로 돌변하더군요. 

물건의 내용이 민감한 것들이라 공항에서 여기 저기다가 전화를 하고 난리가 난 것 같았습니다.

거의 3시간을 붙잡혀 있었습니다. 불안 해지더군요.

이 친구들이 심문하는데  정부군쪽인지 반군쪽인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물어보는데 대답하기가 참 망설여지더군요.

암튼 한참 열심히 설명을 하고 현지 협상 파트너 실무자 대령 Q를 불러 달라고 했는데도 도통 말을 듣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한참을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대령이 한 사람 들어 오더군요. 물론 저도 얼굴을 모르지요. 들어오자 마다 저를 심문하고 있던 세관직원을 군화발로 사정없이 조인트를 까는 것입니다.

막 뭐라고 한창 난리를 치고 조인트를 까고 완전히 초죽음을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저보고 함께 나가자는 것입니다. Q대령의 에스코트를 받아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왔습니다.

함께 차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아까 세관원을 왜 쪼인트를 까버렸냐고 물어 보았더니 자기가 연락을 받고 바로 풀어 주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직접 공항까지 나온거라고 하면서 미안하다고 하더군요. 

호텔로 가는 30여분 동안 도로 곳곳에 군인들이 총을 들고 검문을 철저히 하고 있더군요. 분위기가 참 살벌했습니다.

야 이것 잘못 온 것 같다라는 생각에 불안감이 서서히 밀려 오더군요.

 

Q대령은 저를 호텔에 남겨 두고는 피곤 할 테니 오늘은 쉬고 내일 오전에 상담을 위해 픽업을 하러 오겠다고 하더군요암튼 내일 상담을 마치면 모레는 바로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먼저 회사에 도착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데 전화 사정이 문제였습니다.

호텔 로비에 전화가 한대 있는데 먼저 국제 전화를 신청해서 한시간정도 기달려서 받는 전화 였습니다.

먼저 국제 전화를 신청해두고 호텔 로비에서 기달리고 있었습니다. 호텔 로비에는 외국인 두명이  있더군요. 물어 보니 프랑스 기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곳 치안 상황에 대해 몇가지 물어 보았습니다.

기자들 하시는 말씀이 절대로 혼자서는 호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더군요. 시내에 나가면 외국인들은 공격의 대상이 된다고 하더군요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로비가 일주일전에 반군의 공격을 받아 총격으로 여러 사람이 다쳤다고 하더군요.   아이쿠 큰일 났구나 싶더군요. 괜히 왔구나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신청한 전화는 연결이 안되고 치안 상황은  않좋고 참 난감했습니다. 꼼짝없이 호텔에서 갇혀 지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일 신속히 상담끝내고 돌아가야 겠다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다음날, 약속 시간이 다되었는데도 Q대령은 오지를 않습니다.

오전 내내 기다렸는데도 아무 연락이 없어서 이것 참 힘든 동네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국제 전화는 연결이 잘 안되고 참 여러가지로 난감하더군요.

그냥 돌아갈까 하는 마음도 들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 갈수 도 없는 것 아니냐 하는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일단 왔으니 한번 부딪혀 보고 라도 가야 지 하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오후가 되자 Q 대령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금 전황이 심각해서 전선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호텔에서 일단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내로 돌아 와서 상담 마무리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으니 그냥 귀국 하겠다고 했더니 안된 다고 하면서 꼭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하루 이틀만 더 기달려 보기로 하였습니다.

 

Tv에 나오는 현지 방송 뉴스들 보니 주변 마을에서 반군들에게게 희생된 민간인들의 사진들이 많이 나오더군요. 정부 방송이어서 그런지 민간인 피해를 집중적으로 내 보내주는 것 같습니다.

 

길고 긴 기다림의 연속이 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Q대령이 밤에 찿아 와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전선에서 바로 달려 오는 길이라고 하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하더군요.

함께 차를 타고 나가서 해변근처의 한 식당으로 갔습니다.

차가 주차장에 서자 차 밖으로 나가니 Q대령이 옆구리에서 권총을 뽑아 드는게 아니겠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헉 설마 ,,,,,,,  머나먼 아프리카,아무도 모르는 앙골라,루완다 해변에서 무슨일이 일어 나지 싶었습니다Q대령이 저한테 다가오는게 아닙니까, 그러고는 어두운 해변가 쪽으로 가더니 탄환을 모두 빼내어 버리는게 아니겠습니다.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그리고는 물어 보았습니다. 왜 탄환을 모두 제거 하느냐고,,,?  그랬더니 저녁 먹으면서 술 한잔 하게 되는데 혹시 총기 사고가 날지 몰라서 그런다고 하면서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암튼 참 어려운 저녁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현재 전선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그래서 후방에서 상담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치, 나도 더 이상 이렇게 체류 하고 있을 수 가 없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빨리 결정을 내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내일 모든 상담 마무리를 하기로 하고 다음날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상담을 시작하여 밤 늦게까지 기나긴 협상을  모두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정말 목숨 걸고 수주한 오더 였습니다.

 
여기까지 1부 마무리하고 2부는 다음 포스팅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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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하나로 묶은 차(

 

()는 중국에서 태어나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먼저 이웃의 여러 민족, 우리나라는 6세기 신라 선덕여왕 때 녹차가 전래되었다고 하며 9세기부터 실크로드를 오가던 아라비아 무역 상인에 의해 아라비아로 전해지고, 16세기 동방 무역에 종사한 항해사와 상인 혹은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어 17세기 들어 마지막으로 유럽에 전해지면서 세계를 하나로 묶게 된 것 입니다.


그럼 커피는 언제부터 발견되었을까요?

 커피는 10세기 에티오피아의 카파'(kaffa)고원에서 예멘의 상인 세이프라는 사람에 의해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커피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 했다고 합니다. 산기슭에서 산양 무리가 묘한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흥분하여 껑충껑충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셰이프가 호기심에 열매를 한 개 물었더니 맛이 쓰면서 신통하게 머리가 맑아 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나무를 예멘으로 가지고 와서 재배하고 실험 삼아 열매를 따서 볶아서 끓여 즙을 마셨더니 뭐라고 형용 할 수 없는 향기가 감도는 것을  발견 했다는 것 입니다. 커피 마니아들은 셰이프 할아버지에게 감사 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기록상으로는 16세기 전설적인 이스라엘 왕인 솔로몬 왕이 처음으로 커피를 애용했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구의 동쪽에서 유래된 차(茶)가 가장 반대편인 서쪽 끝인 모로코 사하라에는 언제 전래 되었을까요?

모로코에는 18세기 중반, 유럽과 북서부 아프리카 지역이 교역이 왕성 하였다고 합니다. 교역이 왕성 하다 보니 많은 유럽인들이 드나들게 되자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고 많은 유럽 범법자들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러자 유럽에서는 당시 모로코의 술탄 물레이 이스마일 (Sultan Moulay Ismail) 에게 사절단을 보내 죄수들 석방 협상을 하게 되었고 석방의 대가로 많은 차와 설탕을 바치게 됩니다. 이때부터 모로코에는 동양의 차가 전래 되게 되었습니다. 

사절단을 맞이하는 물레이 이스마일 왕

특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때 영국 자기세트 산업을 돕기 위해 모로코 왕실에 예쁜 자기세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왕실을 중심으로 차를 마시는 전통이 생겨 이후 100여년에 걸쳐 대중화 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중국으로부터 직접 차 수입을 하고 있고  중국 녹차를 세계 어느 다른 나라보다 가장 많은 양을 연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차를 지칭하는 세계 각국의 말은 원래 중국의 광둥어(廣東語)인 차(ch’a) 와 푸젠어(福建語)의 타이(tay) 혹은 테(te)의 두 계보에 따라 나누어진다. 광둥어의 ‘ch’a’에 속하는 것은 한국어, 일본어의’, 포르투갈어, 힌두어, 페르시아어의 샤(cha), 아라비아어, 러시아어의 샤이(chai), 터키어의 샤이(chay) 등이 있다. 한편 푸젠어 타이/(tay/(te))에 따르는 것은 네덜란드어 ‘thee’, 독일어 ‘tee’, 영어 ‘tea’, 불어 ‘th’e’ 등이다. 이렇듯의 지칭이 크게 둘로 갈리는 것은 그 전해진 루트가 육로 혹은 해로로 나누어진 데서 유래된다. 즉 광둥어계는() 육로를 통해, 푸젠어계는() 해상 무역을 한 네덜란드를 거쳐 유럽 여러 나라로 전해진 데 기인된다.

 

 

사하라 에서 마시는 모로코 박하차 


모로코 차(아테이 ) 만들기


중국 녹차(그린티)( chun mee 혹은 zhu cha) 와 신선한 박하(민트) 잎을 충분히 준비하고 설탕 을 준비한 다음, 녹차 1 티스푼당 설탕 5 스푼정도의 비율로 하면된다,


먼저 녹차를 차 주전자에 넣고 소량의 뜨거운물을 넣고 1분후에 물을 빼 부어 냅니다.( 차의 쓴 맛과 먼지등을 우려내 버린다.)


박하(민트)잎과 설탕, 그리고 물을 넣은후에 끓인다.

3-5분 후에 차를 컵에 따랐다가 다시 주전자에 넣는다.(2-3회 반복하면 차가 골고루 우려 나게 된다)
이때  좀 더 달게 먹고 싶으면 설탕을 좀 더 넣기도 합니다.


충분히 차가 우려내지면 찻주전자를 높이 들어 잔에 차를 따른다.
(높이 들어 따르면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도 하고 잔에 차 거품을 만들기도 하며 또한  
차 가루가 컵 아래로 가라 않도록 합니다.)




모로코에서는 차를 아테이
(Arabic: اتاي - Atai) 라고 부릅니다.

모로코 스타일의 차는 박하/민트 차로서 식사 때 뿐만이 아니고 언제든지 손님이 올 때면 손님 환대용으로 함께 마시고 있습니다.

특히 모로코 나 사하라에서는 차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특히 집안의 어른이 준비를 해서 손님에게 권해드립니다. 이때 차를 사양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됩니다. 그리고 통상 3잔을 마시게 되는데 각 찻잔에 의미가 있습니다.


첫잔은 치열한 인생()을 위하여

둘째잔은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

셋째잔은 편안한 안식을 위하여

 

모로코 차는 견과류(호도,땅콩,아몬드,무화과 등)와 여러 가지 쿠키(과자)들과 함께 손님 접대시 나옵니다. 그리고 차 컵도 아주 아릅답니다.

그래서 모로코 차는 혀끝으로만 만끽하는게 아니고 시각적인 눈요기로서도 아주 훌륭합니다. 
자, 여러분들도 모로코 박하차 한잔 하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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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차 출장이 한달이상 길어져서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출장중이라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매년 공교롭게도 출장일정이 결혼 기념일이나 아이들 생일들과 자주 겹치게 되어 제대로 아빠노릇을 못하게 되네요.

 

   
모처럼 연휴를 맞아 아이들이랑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해외에서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위한 휴일 나들이란 간단치가 않습니다. 한국처럼 여러가지 시설들이 이곳 저곳에 잘 되어 있는것도 아니고해서 아이들을 위한 나들이는 그리 거창하지를 못합니다.

 

    
날씨가 이제는 한여름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여 선선한 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그래도 한 낮에는 27도 이상이네요.
 

그래서 시원한 장소에서 때늦은  피서를 즐겨보자는 아이들의 성화에 카사블랑카의 집에서 100km정도 떨어진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 있는 아이스링크를 방문해서 스케이트를 타기로 하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된
딸아이가 오늘은 김연아가 되어 보겠다고 잔뜩 벼르네요. 언감생심 이지요. 월드 챔피언, 피겨의 여왕인 김연아선수가 세계 탑 클래스로 국위를 선양하는 뉴스를 들을 때마나  해외에서 거주하고 있는 교민으로서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끼곤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롤 모델이 되고 있고요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더없이 행복합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라바트로 가는 고속도로

항상 이 길을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가끔 나도 모르게  조덕배의 노래 구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다가가면 뒤돌아 뛰어가고 쳐다보면 하늘만 바라보고 내 맘을 모르는지 알면서 그러는지 시간만 자꾸 자꾸 흘러가네

스쳐가듯 내 곁을 지나가도 돌아서서 모른척 하려해도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대는 무지갠가 뛰어갈텐데 훨훨 날아갈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아이처럼 뛰어가지 않아도 나비따라 떠나가지 않아도 그렇게 오래 오래 그대 곁에 남아서 강물처럼 그대 곁에 흐르리

뛰어갈텐데 날아갈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스쳐가듯 내 곁을 지나가도 돌아서서 모른척 하려해도 내 마음에 강물처럼 흘러가는 그대는 무지갠가 뛰어갈텐데 날아갈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아이처럼 뛰어가지 않아도 나비따라 떠나가지 않아도 그렇게 오래 오래 그대 곁에 남아서 강물처럼 그대 곁에 흐르리 뛰어갈텐데 훨훨 날아갈텐데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조 덕배

  

 

중간에 카사블랑카 기점 50km정도에 부지니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은 양고기나 소고기, 닭고기등을 파는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운전자들이 중간에 휴식을 취하면서 식사를 할수 있는 아주 대중적인 길가 식당가가 있습니다.
 
점심 때도 지나고 해서 오랜만에 양고기 숯불구이를 먹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피자나 샌드위치, 햄버거등을 먹자고 하였으나(항상 아이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좋아해서 걱정입니다...) 거리가 멀고 시간도 지체되어 중간에서 쉬어가면서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들어가는 초입에 사거리를 예쁜꽃들로 단장을해놓았네요.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었는데  성수기를 맞이하여 도로단장을 하였는가 봅니다. 이곳도 점차 하나 하나 개선되어 나가는 부분들이 눈에 뜨이게 많아 졌습니다. 모로코는 국가경제의 30%이상을 관광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이기에 앞으로 여러 부분에서 더욱더 많은 변화와 개선이 있을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쁜꽃들을에 시선이 팔려 배고픈줄도 잊었네요.

 


도로변에 있는 식당들에서 숯불구이 냄새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배고픈 식욕을 자극합니다.

 

서둘러서 주차장에 차를 대고나서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이곳은 식당과 정육점이 따로 구분이 되어 있어서 먼저 앞에 있는 정육점에서 필요한 양 만큼의 고기를 먼저 구매를 하고 난후에 따로 고기를 구어주는 식당에 가져가서 구워 달라고 합니다대부분 양고기를 많이 먹는지라 양고기가 많이 걸려 있지요.

 

날씨가 건조하기 때문에 냉동고나 냉장고 설비가 따로 없습니다. 그래도 고기는 항상 신선합니다. 양고기는 냄새가 있다고들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이곳의 양고기는 아주 신선해서 전혀 냄새가 없습니다.

  


양고기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양갈비
(코들렛) kg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고기 동그랑땡(케프타 kg를 시켜서 숯불구이에 구웠습니다. 갓구운 숯불구이의 따끈따끈함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가 식욕을 한껏 자극합니다.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소박하지만 야채 샐러드 한 접시와 박하차를 곁들여서 간단한 점심을 마쳤습니다

야채 샐러드는 상추를 깔고 ,토마토 썰어 넣고 양파를 곁들이고 식초를 살짝 가미한 싱싱한 야채 샐러드였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와 주차장에 와 보니 차를 말끔하게 세차를 해놓았네요. 차를 닦아 달라고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세차를 해놓았네요.

얼마를 주면 되느냐 물어 보았더니 주고 싶은 대로, 되는 대로 달라고 합니다. 안줘도 된다고 하더군요.^^   신의 뜻이라면(인샤알라),,,,,,, 아직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인정미 넘치고 서로 배려해주고 넉넉한 인심이 우리네 시골의 정겨움처럼  철철 넘치는 곳입니다. 사람사는 냄새와 훈훈한  정이 많은 곳입니다.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입니다
.
아직 스케이트가 서투른 아이들은 링크 벽을 잡고 서 있네요. 딸아이는 아주 잘 타네요. ㅎㅎ. 이런 아이들이 장차 김 연아선수처럼 월드 챔피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모로코 왕국은 북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이 상당히 많은 부분은 차지하는 국가입니다. 사막의 나라 모로코에서 스케이트를 즐긴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잘 타는 아이들은 씽씽 잘도 달립니다
.
아프리카에서 스케이트타기란 쉽지만은 아닌데 다들 잘들 탑니다. 모로코에서도 스케이트 링크가 거의 없거든요..


시설이나 조건이 열악해도 이 아이들도 장차 한국의 김연아처럼 멋지고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연아는 기부 천사라고도 하는데 3년간 무려 20억원을 후배들이나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모로코의 꿈나무를 위해 한번 와달라고 하면 안되겠지요. ㅠㅠ;

여러분들도 아프리카 꿈나무들에게 많은 성원과 응원 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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