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카스바에 대해서는 이미 잘알고 계시지요.
(
이전 포스팅: 카스바의 춤추는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  
http://casablanca90.tistory.com/36
)

카스바에 아릿따운 여인만 떠올리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네요 지금.ㅎㅎㅎ

(아니면 카스바가 무슨 아이크림 인가 아니면 어디 맥주 파는 곳인가 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전 포스팅들에서 보셨다시피 성곽도시 혹은 요새화된 도시를 카스바 라고 하지요.

 

모로코 수도 라바트를  방문하시게 되면은 역시 빼놓고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이곳

카스바 우다이야(the Kasbah des Oudayas) 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카스바 우다이야를 3회에 걸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카스바 성곽/- 모루 카페 와 카스바 골목길/하-안달루시아 정원) 


일명  도심 속의 또 다른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서양과 부레그레그 강 포구의 높은 절벽위에 요새처럼 세워져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게 보입니다. 

12세기 알모하드 왕조시대에 건축 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메흐디야(mehdiya)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스페인 정벌을 위한 성전에 참가하는 전사들의 전초기지로 사용 되던 요새 도시였습니다. 라바트라는 도시명이 유래하게 되었던 강건한 승리를 쟁취하다(Ribat El Fath) 라는 슬로건하에 스페인 정벌에 나섰던 전사들의 승리를 다짐하는 승리의 요새였던 것 같습니다. 이 승리의 요새를 전초기지 삼아 실제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과 지중해 연안을 500여년간 지배를 하게 되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강건한 승리를 만끽하게 되었으니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성전에 참여했던 전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듯 망루위의 대포가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이 아직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카스바 정문쪽에서 본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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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동안 스페인과 지중해 연안을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의 영토와 권위를 자랑하던 제국의 영화는 영원 할 수가 없는게 역사의 순리인 것 같습니다.

 

카스바 성채와 라바트 시내-(중간에 하산타워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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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지배하던 이슬람세력(안달루시아)들이 기독교 세력에 의해 축출되면서 모로코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면서 이곳의 이름은 카스바 안달루스(Kasbah Andaluse)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정벌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최전선의 요새 도시가 스페인에서 넘어온 무슬림 피난민들의 마지막 정착지가 되는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카스바 주변을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중입니다.

이런 연유로 당시에 가꾸어졌던 성안의 정원이 안달루시아풍의 정원이라고 해서 안달루시아정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다음 포스팅에서 올릴 예정임)

 

우다야 정문( bab al oudaya)

그리고 1833년 페스의 부족인 우다이야(Oudayas)가 라바트로 옮겨오면서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카스바 우다이야(Kasbah des Oudayas)로 불리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됩니다. 어떠셨나요?   -다음 포스팅에도 카스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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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비즈니스 가이드 발간-코트라

꼭 알아야 할 문화코드 5題 제시
코트라는 중동 지역에서 사업하는 데 유익한 정보를 담은 `중동.북아프리카 비즈니스 & 문화 가이드'를 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11개국의 KBC(코리아비즈니스센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경험담을 묶은 이 책은 `꼭 알아야 할 중동 비즈니스 문화코드 5'를 제시했다.
이 책에 따르면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에서 최고의 소비시즌은 이슬람력으로 9월에 해당하는 `라마단' 기간이다.
모든 무슬림들이 낮 동안에 금식하는 이 기간을 전후해 이슬람권에서는 식품류는 물론 전자제품, 자동차 등 전 품목에 걸쳐 대대적 할인행사가 펼쳐진다.
중동 최대 시장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경우 라마단이 끝난 직후 전자제품, 자동차, 의류 등 소비재 판매가 급증해 그 규모가 연간 매출의 30~40%에 달할 정도다.
이 책은 이슬람권에서는 라마단 특수를 잘 활용해야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책은 또 중동 시장에서 한류 마케팅이 통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이란에선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에는 드라마 `주몽' 85%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LG
전자는 주몽의 주인공인 송일국을 내세운 광고로 이란 평판TV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중동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없다.
사업 파트너가 약속시간에 1~2시간 늦게 나타나는 것이 다반사여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접촉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 책은 조언했다.
이밖에 중동 바이어들은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 상담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성들이 중동 시장의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른 점도 주목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코트라 관계자는 "이슬람 문화코드를 이해하면 중동에서의 비즈니스 기회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김경희 기자 = kyunghee@yna.co.kr

 

중동 아프리카에서 비즈니스 가이드가 아주 유용 할 듯 싶습니다.

코트라에서 각 지역에서 근무하시는 직원들이 직접 체험하고 느낀 점들을 가지고 자료를 작성하신 듯 합니다.

 

모로코에서도 역시 유사한 비즈니스 환경이 많습니다.

주변 거래선들 보면 역시 직접 대면해서 상담을 하는 것을 선호 합니다.

상담 약속을 잘 지키는 분들도 있지만 약속 시간 개념이 드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속이 되어 있더라도 사전에 다시 약속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관공서에서 서류 업무차 가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만 제때 서류 업무 처리가 되는 경우가 참 드물어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담당 직원이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고 혹은 최종 결재를 하는 사람이 자주 바뀌거나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시는 분이 30여년 전에 땅을 구매해 두었습니다.

이분은 당시 회사 생활을 하면서 틈틈히 저축을 하여 새로 들어서게되는 신 도시쪽에 택지를 분양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이 등기가 되어 있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모로코의 오래전 관행이 주택이나 대지가 대부분 등기가 되어 있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지금도 등기다 되어 있지 않은 땅의 매매가 당사자들의 계약서로 이루어 지 곤 합니다.(이 계약서는 물론 법원의 공증을 거치게 됩니다)

 

이분이 퇴직을 하여 오래 전에 구매 해둔 대지에 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기 위해 받는 허가 서류가 참 많습니다. 기본적으로 5개에서 10개의 도장과 싸인이 필요하는 서류가 참 많습니다.

우여 곡절끝에 집을 다 짓고 나서 등기소에 등기를 신청 하였습니다.

문제가 원래 대지가 등기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이라 시간이 담당 공무원들이 확인을 거치는 절차가 많이 필요 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등기를 신청한지가 벌써 5년째입니다. 어제 등기소에 찾아 가서 문의를 하였더니 15dh(2,000원 상당)을 내라고 하더군요.(그 전에는 이런 문의 비용을 내라고 한적은 없었는데 새롭게 생긴것인지 어쨌튼 참 황당하더군요)

무슨 돈이냐고 했더니 문의 비용 이라고 하더군요.

자기들이 업무 처리를 5년씩 끌면서 그것도 매번 찾아와서 일일이 담당자 찾아 다니면서 문의를 해도 제대로 된 정보를 안 주면서 이젠 민원 문의 비용을 받는군요.

 

그래서 등기소장을 좀 만나겠다고 했더니 윗층으로 올라가 보라고 하더군요,

윗층에 등기소장실에 가서 면담을 신청하는데 역시 자리에 없습니다.

다른곳에 미팅이 있다고 2시간 후에 사무실에 들어 온다고 합니다.

2시간 후에 다시 찾아 갔더니 자리에는 있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 등기소장과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등기소에서 5년동안 10여명의 등기 소장이 바뀌는것 같습니다.

등기소장에게 사정 설명을 하고 도대체 등기 하나 받는데 5년씩이나 소요되는데 이게 너무 한 것 같다고 했더니 5년은 짧은 거라고 하네요. ㅎㅎㅎ

할말이 없습니다.

현재 모든 확인 절차가 다 끝나고 서류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 이번달 말에 다시 오면 그때는 처리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모든 확인 절차가 다 끝났으면 바로 해주면 되지 왜 이번달 말에

다시 오라는지 답답합니다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이번 달 말에 다시 가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달 말에라고 등기를 받으면 드디어 5년 만에 건물 등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21세기에 이처럼 아직도 후진적인 업무처리 방식이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을 잘 알아야 비즈니스를 하던 현지에서 거주를 하던 기본적으로 생활을 해나가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국제적인 보편적인 기준으로 ,혹은 한국에서의 생활 하시던 사고 방식으로(한국은 인터넷 등기소도 있지요) 해외 생활을 하시거나 비즈니스를 하시다가 많은 애로를 겪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좀 더 세밀하게 현지의 관습과 문화를 이해하고 사전에 여러 각도로 정보 수집도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하셔야 해외 생활이나 사업 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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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로코 의 사랑방을 한번 엿보겠습니다.
이곳에서는 손님이 오게 되면 살롱(거실)에서 손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거실에는 각종 정통문양으로 장식을 해서 아주 이국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라베스크 문양과 환상적인 샹들리에로 천장과 벽을 꾸며 두지요.


벽면 역시 아라베스크 문양의 타일을 붙여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 내개 합니다.


자 여기서 소개 하고자 하는 모로코 사랑방의 특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위의 그림처럼 일반 소파 스타일로 앉을 자리를 마련해두는 것은 좀 현대화된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원래 모로코 전통 스타일은 아래와 같습니다.

 각각의 벽면은 특수 페인트로 칠을하여 습기가 배어 나오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거실 사이즈에  맞추어 양탄자를 만들어 배치 합니다. 그리고 벽면에는 사각형의 쿠션을 만들어서 손님들이 앉았을때 뒷쪽에 기대어 편안하게 지낼수 있게 배치 합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원형 탁자를 두어 거기에 차와 음료,음식들을 놓고 먹습니다.

바닦쪽에는 20cm정도 두께로 나무 받침대를 만듭니다. 각자 취향에 따라 나무면에 문양을 새기기도 하고 색상을 칠하기도 합니다만 전통적으로는 니스칠을 합니다. 이 나무 받침대는 바닥의 한기를 피할수 있도록 바닥에서 양탄자를 띠어 놓는 역할을 합니다.

나무 받침위에는 50cm정도 두께의 매트리스 종류를 올립니다.
이 매트리스안에는 전통적으로는 양털을 사용하여 꽉채웁니다.
 보통의 거실이 상당히 넓기때문에 매트리스 만드는데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됩니다.
이 매트리스의 폭은 70-80cm 정도 됩니다. 길이는 거실 사이즈에 맞추어 주문 제작을 합니다. 물론 바닦의 나무 받침도 주문 제작을 하지요.

각각의 모서리 부분에는 수납장을 만들어 여러가지 물건을 수납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거실이 나름대로 참 유용하다고 생각되는게 일반적으로 손님들 맞을때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때 사용을 합니다만 특별히 명절이나 집에 파티를 하고 손님들이 숙박을 할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손님들이 여기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의 거실에는 6명이 잠을 잘 수 있도록 사이즈가 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랜된 전통 가옥에서는 남자용 거실과 여자용 거실이 따로 분리 되어 있기도 합니다. 옛날 전통에 따르면 아주 가까운 가족이 아닌한 손님이 와도 여자주인은 남자 손님이  있는 거실에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차와 음식도 남자 주인이 주방에서 직접 가져와서 거실에 있는 손님에게 접대를 합니다. 지금은 많이 현대화 되어서 이런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집들이 있는 반면에 서구화 영향으로 안 주인이 대부분  손님들을 맞이하는게 대중화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모로코 전통 사랑방 문화를 엿보기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로코 친구 집에 초대를 받으면 이런 거실에서 앉아서 따끈한 박하차를 마셔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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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수도 라바트에는 도심에 왕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투루하산(하산 탑)이라는 곳입니다.

이번에 김 형오 국회의장께서 지중해 연안 3국 방문을 하시는데 이곳을 방문하여 헌화하고 묵념하시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더군요. 

이 건물은 현 모로코 국왕(모함메드 6)의 할아버지인 모함5-(모로코 독립을 이끈 영웅) 를 대리석관에 안장해서 중앙에 안치해두고 있으며 좌우로는 큰아버지와 아버지(하산 II)의 관을 안치해 두고 있습니다.

내부 천장 모습입니다.
말을 탄 근위병들이 사원 주변을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이 무덤 건물 앞쪽에 위치한
라바트 하산탑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의 기념비적인 탑으로 베르베르왕조인 야꿉 알 만수르가 1195년에 건축을 시작했던 장대한 모스크의 첨탑입니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이슬람 첨탑과 이슬람 사원으로 설계되고 건축을 할 예정이었습니다만  4년 후 야크브 알만수르가 사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현재까지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실제 탑의 높이는 86m 높이로 설계되어 있으나 현재는 44m까지높이로 미완의 절반인 채로 서 있습니다.

 

특히 이 첨탑의 내부는 계단이 없이 완만한 경사로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 무앗딘(Mouaddine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맘) 이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는 첨탑이지만 건축물의 화려한 외형은 물론이고 정교한 건축물의 구조 때문에 현재까지도 많은 분들이 이 첨탑과 사원 터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 탑의 앞쪽 광장에는 20,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원을 지었으나(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외부 면적) 1755년 거대한 지진으로 삼나무로 지어졌던 지붕과 흙벽들은 무너져 기둥으로 썼던  돌기둥만 300여개 이상 남아 있으며 그 기둥의 높이는 3.5M, 두께는 어른 2-3명이 둘러 안을 수 있는 정도의 두께로 이태리에서 가져온 대리석을 사용 하였다고 합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관리 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당시 12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거대한 규모의 ,첨탑과 사원을 건설하고 지휘했던 야꿉 알 만수르는 누구일까요?

 

그는 당시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 서부 아프라카를 지배하던 광대하고 강성한 무슬림,베르베르 왕조인 알모하드 왕조의 국왕이였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라바트 시내의 유적지를 보면 우다이야 카스바(성채) 와 셀라 라는 로마 유적이 있는데 당시 야꿉알 만수르 왕때 재건하고 증축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니 당시의 번영과 세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원과 첨탑을 디자인 했던 사람은 건축가 자비르
(Jabir) 라는 사람이였는데  마라케시에 있는 쿠투비아 사원의 첨탑과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 붙어 있는 히랄다 (Giralda) 탑을 디자인 했는데 그 모습이 하산 탑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설계되고 건축 되었다고 합니다. 이 히랄다 타워는 이슬람 왕조가 물러나고 스페인 왕조가 들어서면서 무적함대(Armada)로 유명한 스페인의 절대 군주 펠리페 2(Felpe II)때인 1568년에 와서야 종루와 꼭대기에 풍향계가 설치되어 현재 세비야 성당의 종탑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풍향계가 히랄다(Giralda)인데 풍향계(Giralda) 가 있는 탑이라고 해서 히랄다 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산 탑과 쿠투비아 사원 탑,히랄다 탑을 비교 해보겠습니다.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타워
그리고 이 탑의 디자인은 
 이후 세계적으로 많은 건축물들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쿠투비아 사원 탑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 타워 종탑
             스페인  University of Puerto Rico's Río Piedras campus 시계탑
                         뉴욕 메디슨 스케어가든(현재는 파손되어 보존이 되지 않음)

                      미국 캔사스 의 히랄드 타워
미국 시카고, 미니아폴리스  Milwaukee Road depot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             

모로코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타워가 위의 모든 탑들의 할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모로코의 탑이 스페인, 미국의 유수의 도시에 있는 유명한 건물 타워의 기준이자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흐름과 건축술의 전달 경로가 자못 관심과 흥미를 끌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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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을 처음으로 방문 하였을 때가 92년도 12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영국 하면 EPL로 인해 박지성,이영표(사우디 리그로 가 있지요)설기현,조원희,이청룡 선수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이지요.


영국 하면 런던포그버버리 코트 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비행기로 영국 히드로 공항까지 3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갈때는 비행기로 3시간 소요되는 길을 올 때는 3 4일이 소요 되었습니다.

 

12월의 런던은 명성답게 안개가 참 많이 그리고 자주 끼곤 하더군요. 요즘도 물론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런던에서 업무를 마친 다음에 차를 가지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런던 출발 할 때가 12 24, 유럽 전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들어가던 날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500 km 6시간이상이 소요 됩니다.

 

아침10시경 런던을 출발하여 도버해협을 페리선으로 건너왔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만 1시간 정도 소요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로 철도가 해저 터널로 연결이 된것 같더군요,어제 뉴스 보니 유로 철도도 폭설로 운항 중단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공항은 몰론 말 할것도 없고요, 지금 유럽도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네요.)


프랑스 깔레항에 도착해서 좌고우면 없이 바로 파리를 향해 출발 했습니다
.

칼레에서 파리까지는 잘 닥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파리를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더군요. 한국처럼 경부선 고속 도로에 올라서면 서울쪽 표시판만보고 달리면 서울이 나오는 격입니다.

 

프랑스는 고속도로가 파리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쫙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파리로 들어가기는 참 쉬운데 파리에서 빠져 오는 것은 좀 어렵더군요.

 

파리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 다 돼어 갑니다.

일단 주유소에서 개스를 채우고, 물론 당시에도 셀프 서비스입니다.

주유소 직원에게 행선지를 물으니 거의 영어를 못하더군요. 저 또한 당시에는 불어를 전혀 못했을 때 입니다.

 

당시 알고 지내던 파리 교민 회장님을 만나야 하는데 파리 도로 사정을 모르니 참 난감하더군요. 역시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에서 겨우 겨우 물어서 회장님댁을 찾아 간 기억이 있습니다.

파리는 도로사정이란 어찌 그리 일방 통행길이 많은지, 비슷비슷한 골목길에다가 구불 구불 일방 통행길에 잘못 들어가면 그야 말로 방향을 잃어 버리고 말더군요.

 

옆에 같이 동행한 일행이라도 있으면 지도 책을 보면서 차근차근히 찾아 갈 수도 있을 텐데  홀로 차를 몰고, 그것도 영국차량이라 핸들이 오른쪽에 달려 있는 차를 몰고서 생전 모르는 파리의 길을 찾아 간다 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물어 물어 밤늦게 회장님 댁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참 반갑게 맞이해 주시더군요. 저녁 늦게 찾아 갔는데 밤늦게 회장님 사모님께서 끓여주시던 김치 찌개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음식을 잘 접하지 못하는데 가끔 해외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으면 어찌 그리 반갑고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두분 모두 새해에도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1225일 성탄절 밤을 정신 없이 길 찾느라고 보내 파리의 야경을 그 당시에는 제대로 구경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에펠탑도 한번 보고 가야지 하는 엄두도 못 내었던 것 같습니다.

에펠탑은 나중에 아이들이랑 함께 방문해 보았습니다만ㅎㅎ

 

그 후에 가끔 파리를 방문하면 차를 가지고 파리 시내를 멋모르고 뛰어 들었던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다음날,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지도를 펼쳐 놓고 도상연습을 했습니다만 실제로 파리 시내에서 스페인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를 찾아 빠져 나가기가 참 힘들더군요.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까지는 1,300km 15시간여의 여정으로 오늘 달려야 합니다.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거쳐 보르도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 오는데 12월의 프랑스는 당시에 비가 참 많이 오더군요. 그래도 다행이 고속도로 상황이 좋아서 아무 무리 없이 잘 달렸습니다. 프랑스 국경선과 스페인 국경선은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 철책처럼 분단의 장벽이 있는게 아니더군요. 단지 톨케이트 빠져 나오면서 톨게이트 비용만 내면 되더군요. 차이는 당시엔 유로 통화가 없던 때라 영국 구간은 영국 파운드로, 프랑스 구간은 프랑으로 톨게이트 비용 내고 스페인 쪽으로 넘어 오면 스페인 구간은 페세타로 도로 사용료를 지불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톨게이트를 지날 때 마다 차량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관계로 매 톨게이트 마다 요금을 지불하거나 티켓을 꺼낼 때마다 차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일일이 요금 내고 티켓 을 뽑곤 했습니다. ㅎㅎ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도로 사정은 아주 양호합니다.

단지 스페인 국경지대에 피레네 산맥이 있습니다. 이 산맥 지역의 고속도로만 산악 지형 때문에 약간 구불구불 한 구간이 일부 있습니다만 이 지역을 벗어 나면 역시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마드리드 역시 파리와 마찬가지로 크리마스 연휴로 온통 휘황 찬란 합니다.

다음 날 마드리드 광장 및 시내를 간단히 둘러 보고 바로 차를 몰아 알제시라스 까지 가야 합니다. 700km 8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 세비야,카디즈를 거쳐 스페인의 최남단 알제시라스에 도착 하니 오후가 다 되었습니다.

 

알제시라스에서 모로코 북부 탄제까지 는 페리 보트를 타고 갑니다.

지부로울터 해협 14km 1시간 30여분 페리 보트를 타고 가면 모로코 입니다.

 

스페인을 들어 서면서부터 브레이크쪽에 이상이 있다는 싸인이 들어오더군요.

차가 너무 혹사 당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무시하고 알제시라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알제시라는 해안 지역이라 시내 길이 경사진곳이 많습니다.

좀 한적한 길을 내리막길을 가는데 커브길인데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잘 듣지를 않더군요. 커브를 틀지 못하고 그냥 앞으로 쳐박히다시피 내려 앉았습니다.

당시 앞쪽이 약간 낮은 공터라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그 곳이 절벽길이나 해얀 길이었으면 어떡하였나 하는 생각에 지금도 가끔 꿈속에 떠오르곤 하는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니다.

빨리 가는게 능사가 아니지요.

무조건 차부터 다시 점검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휴라 지정 정비소가 문을 여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타고 가던 차량이 BMW였는데 전 세계 어느 도시에 지정 차랑 정비소가 있더군요.  그래서 좋은 차를 타야 하는가 봅니다.

알제시라스에도 지정 정비소가 있어서 찾아 갔더니 마침 문을 열고 영업을 하더군요.

브레이크쪽이랑 그외  몇군데 정비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페리 티켓을 구매 하는데 당시 연말 연휴라 엄청난 차량들이 부두에 대기 하고 있더군요.  요즘에는 페리보트 운영을 여러 선사에서 자주 하지만 당시에는 몇대 운항을 하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질서 요원들도 없어서 그냥 차량 진입 하는 대로 부두로 들여 보내 더군요.

 

그러다가 그만 부두 중간에서 묶여 버렸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부두에서 하룻밤을 꼬박 차 안에서 새우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앞뒤로 차량들이 막혀 있어 오도 가도 못하고, 차를 나두고 그냥 나올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리보트만 타면 바로 모로코 집으로 갈수 있는데 배를 못타니 하는 수 없는 거지요.

그 당시는 젊었을 때라  혼자서도 여행을 자주 다녔었습니다만 완전히 생고생을 많이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첫배 조차도 못탈 정도로 제 앞쪽으로도 차가 많이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3번째 페리보트를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모로코에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로코에 집이 있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ㅎㅎ

탄제에서 카사블랑카 까지는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서 4시간이면 주파 합니다만 당시에는 왕복 2차선 길이라 500km의 거리를 거의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루트 였습니다.

그래도 밤늦게 카사블랑카에 잘 도착 하였습니다. (도시별 세부 사항은 나중에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장장 3,000km가 넘는, 34일간의 유럽 대륙 종주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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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화원 앞쪽 도로 중간 의 작은 도심 공원

한국은 폭설이 내려 난리가 났다고 뉴스에 나오네요.

여러 이웃 분들 모두 무고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곳 카사블랑카에는 온종일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여기도 날씨가 아주 변덕 스럽네요. 비가 쏟아지면 아주 양동이로 퍼 붓듯이 오다가 한 2-3분 후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그치곤 합니다. 하루로 3-4번 그런식으로 비가 오네요.
눈이 없는 지역이라 한국의 눈 소식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럽 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너무 눈이 많이 내려 고생 한다는 뉴스에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카사블랑카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라서 비가 조금만 내려도 교통이 혼잡스럽습니다.

모로코는 50%이상이 농업경제권이 차지하는 지역이라 매년 우기인 11월부터 2월까지 비가 많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세계 경제의 한파의 여파가 요즈음에 와서야 모로코 시장을 타격하고 있는 상황 에서 비가 자주 오는 때문인지 시장에서 함께 일하는 거래선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생겼습니다.

   스페인 문화원쪽 로터리 모습입니다.

비가 귀한 지역이라 비가 많이 오면 자연적으로 농작물이 풍년이 듭니다.

수 많은 과일,야채,밀 등의 생산량에 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실로 막대합니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야채 나 과일등 생필품 가격이 상당히 안정 됩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기타 소모품들에 대한 소비가 자연적으로 늘어나서 시장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 이지요.

 

   미국 대사관쪽 도로 모습입니다. 보이는 건물은 A 은행 본점 건물입니다.

시내에 업무 보러 나갔다가 사진 몇장을 찍어 보았습니다.

카사블랑카 시내 모습입니다.

 

   옛날 교회 건물이 보이네요. 지금은 교회로 사용 하지 않고 그림등의 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물입니다.

날씨가 아주 변덕스럽습니다.

몇 분 간격으로 비가 왔다가 햇볓이 났다가 아주 오락 가락 하는 날씨입니다. 중간에 오는 비도 아주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몇분 있다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개이곤 합니다. 도통 가늠을 할 수 없는 날씨입니다. 비가 안오는 틈을 타서 사진을 몇장 찍어 봅니다.

시내 버스가 정류장에 서 있습니다.

새해들어 차량등록세를 납부하고 나오면서 찍어본 시내 풍경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이웃 분께서 카사블랑카가 아주 황량 하다고 하셔서 이해를 돕기 위해 시내 사진 몇가지를 올려 보았습니다.
차를 운전 하면서 사진을 찍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블로그에 올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뒷차가 아무리 빵빵 거려도 꿋꿋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ㅎㅎ 


유명한 관광지는 검색해보면 다 나오는 관계로 이번에는 따로 올리지 않습니다.
날씨 추운데 잠시나마 카사블랑카 시내 풍경 감상 하시면서 추위를 녹여 보시기 바랍니다. ㅎㅎ  (날씨는 낮 최고 25도, 최저 18도 입니다. 실제 체감 온도는 더 낮습니다.조금 추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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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셨지요?

새해를 맞이하여 모로코에서도 오랜만에 떡국을 먹었습니다.

새해에 떡국을 먹어본 것이 수년 만에 처음입니다.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새해를 맞이하여 대사님께서 교민들을 초대 해주셨습니다.

주 모로코 한국 대사이신 최 재철 대사님께서는 작년에 부임을 하셔서 아주 정열적이고 활발하게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http://mar.mofat.go.kr/kor/af/mar/legation/greetings/index.jsp (모로코 대사관 홈피)

   해외에서 보는 태극기는 항상 가슴을 울리게 만듭니다.창공에 휘날리는 태극기도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도 개인적으로 여러분들도 역동적이고 활기찬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새해를 맞이하여 교민들을 특별히 초청하셔서 새해 떡국을 함께 들면서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대사님들이 모두 이렇듯 교민들과 가까이 하시고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주시는게 흔치 않은데 새해 들어 초대를 해주시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새해에 세배를 드려야지요.

아이들이 귀엽게 세배를 드립니다.

아이들도 대사님 내외분도 아주 행복해 하십니다.

 

모두들 즐겁게 떡국을 들면서 한 살 더 먹어감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살 더 먹어감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한 살 더 먹는 것을 반기는 것 같고 40십대 이후 부터는 한 살 더 먹는 것을 아쉬워 하는 분위기 입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전나무 꼭대기에 새해가 활짝 걸렸습니다.

세월의 연륜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정원수처럼, 한뼘 한뼘 자라 드높은 창공으로 우뚝 치솟아 있는 전나무처럼 어른들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로 떡국을 잘 먹고 정원을 들러 봅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참 조화롭게 배치 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느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소나기가 아주 힘차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아주 화창한 날씨입니다.

뉴스에 보니 한국은 아주 춥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로코는 아주 화창한 날씨가 새해를 반겨 주는 것 같습니다. 

   야구를 하는 모습이 마치 검도의 자세를 취하는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모두들 신이 났습니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참 천진난만 하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구놀이가 한창입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모처럼 야구 방망이를 잡고 공을 때려 봅니다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포수를 보시는 참사님 폼이 어째 좀 ,,,ㅎㅎㅎ

정원에 공작새 우리가 있어서 잠시 엿보기를 하였습니다
.

7개의 알 중에서 2개만 부화가 되어 암수 한마리씩 새끼가 태어 나서 키우다가

새끼 수컷은 크지 못하고 암컷만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아빠 공작, 엄마 공작, 새끼 공작(딸 공작) 이렇게 단촐 하게 살고 있습니다.

새끼가 자라서 벌써 엄마 공작 만 합니다.

아빠 공작은 꼬리가 아주 화려하고 길게 자라 있습니다.

활짝 꼬리를 펼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만 선뜩 아름다운 꼬리를 보여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진만 찍었습니다.

좁은 우리가 좀 답답해 보였지만 그래도 단란한 가족 공작을 가까이서 보는 아이들은 모두가 신기해 합니다. 

오늘은 새해 첫날,복잡한 생각들 모두 훌훌 던져 버리고 마냥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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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기하학, 천체과학, 의학이나 연금술처럼 서구 르네상스의 토대를 이루었던 이론과 사상들은 모두 아랍에서 전래가 되었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요즘 한창 즐기고 계시는 알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요?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예나 지금이 똑같이 적용되고 있듯이 당시의 문화와 사상을 지배하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군사적인 힘의 논리뿐만이 아니고 앞서나가는 철학,사상과 문화와 문명,과학 등의 진보가 있어야 가능 하겠지요.

 

이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 주변에 싶게 접할 수 있는 아랍어를 하나씩 기회 있을 때 마다 소개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대중 가요 중에 카스바의 여인”-윤 희상 에 나오는 카스바는 아랍어 입니다. 물론 국어 사전에도 나옵니다. 

국어 사전에 보면 카스바 [(아랍어)qaba] [명사] 아프리카 북부의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술탄이 있는 성 또는 건물. 나아가 주변 주거 지역까지도 이른다. 아랍 어로는 본래 성새(城塞)’를 뜻하며 알제리의 수도 알제의 것이 특히 유명하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카스바에 대해 잘 알고 있나요?

오늘은 카스바 란 무엇인가에 대해 해부를 해보겠습니다.

 

모로코를 여행하다 보면 웅장한 대자연 속에 숨어있는 신비스러운 카스바(Kasbah)를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카스바는 아랍세계에서 진흙 벽돌로 만든 성채를 말하는데, 보통 언덕 위나 높은 산자락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카스바는 모로코 도처에 산재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Kasbah
 (Arabic: "القصبة") or Qassabah 라고 하며 아랍어 입니다.

독특한 이슬람식 도시나 성채를 의미 합니다. 그리고 지방 토호(지역 유지)가 살던 곳으로 그 지역이 외부의 적으로 부터 침략을 당할 때에는 방어 성채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카스바는 대개 창문이 없이 높은 벽으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높은 언덕 꼭대기나 포구 입구에 세워져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카스바를 짓거나 소유하는 것은 그 지역의(그 지방 호족의) 부를 상징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 카스바가 있으며 이 카스바는 단지 외침에 대한 방어 용도만이 아니고 그 지역 주민의 생활공간이기도 합니다.


 넓은 뜻으로는 성채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 즉 성곽도시 전체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으며, 19세기 이후의 식민지시대에 북아프리카의 여러 도시에서는 성곽도시의 주변에 새로운 유럽풍의 시가지가 조성되었습니다.

밀집된 아랍풍 시가지구와 넓은 대로를 가진 유럽풍 시가지구의 대조로 인하여, 유럽인은 성채의 유무에 관계 없이 아랍풍 시가지구를 포함한 옛 성곽도시 전체를 카스바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만 실제로 아랍인들은 아랍풍 시가지구를 카스바와 구별하여 메디나(medina:아랍어로 도시·시가지라는 뜻)라고 부릅니다. 즉 카스바는 성채,요새 의 의미가 강하고 실제적인 생활 공간인 도시는 메디나라고 부르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카스바 중에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황량한 사막 위에 우뚝 솟은 요새도시

 

마라케시에서 꾸불꾸불 하고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한 아틀라스 산맥의 낭떠러지 산길을 넘어서 가면 사하라 사막 가기 전에 전통 모로코인 거주지로, 건조하고 황량한 암석 사막 위에 하늘을 찌를 듯이 견고하게 서 있는 거대한 성채의 카스바가 하나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요새 도시로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주변 풍경을 압도합니다. 그리고 카스바 앞쪽은 강이 흐르고 있어 절묘한 방어 요새로서의 기능을 잘 살리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에이트 벤핫두라는 카스바 입니다.

이 강에는 독충이 살고 있어서 강을 건널 때 발이 물에 닿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 되고 있습니다. 강의 수심이 많이 얕아져서 지금은 징검다리로 건너가게 되어 있습니다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징검다리를 건너 가면서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 같습니다. ㅎㅎ

 

이 요새도시는 서부 모로코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곳으로,보존 상태가 아주 좋아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무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또한 경관이 아름다워 관광객뿐만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감독들이 촬영지로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베르베르족의 거주지인 이 요새도시는 11세기에 사막의 대상루트 상에 건설되어 낙타 행렬이 소금을 싣고 남쪽으로부터 사하라 사막을 건너 험준한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가 마라케시로 갔다가 상아,,노예 등을 싣고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한 곳입니다.

 지금은 옛날의 대상 루트의 요지의 번성함을 뒤로 한 채 쓸쓸히 관광객들을 맞이하며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골목과 건물들.

 

마을전체를 둘러싼 방어벽 네 모퉁이에는 요새 답게 망루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방어벽 안쪽에는 카스바라고 불리는 궁전과 성채를 겸한 대저택,일반인들의 주택,다락과 지하 저장고등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으며 회당,학교,모스크,시장,양우리 등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공간도 엿 볼 수 있습니다. 건물들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성채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미궁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건물은 모두 붉은 진흙으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의 굴레 때문에 여기 저기 무너져 내리기도 했습니다만 관광자원으로 가치를 높이 산 모로코 정부가 복구공사를 진행해 오늘날에까지 잘 보존 되어 있습니다.

 

풍광 때문에 영화촬영지로 각광받아

 

암석사막 한 가운데 솟아 있는 에이트 벤하두는 풍경이 아름답습니다. 건너편 강가에서 요새도시를 관망해보면 이국적인 카스바의 모습에 모두들 매료 됩니다. 그리고 요새 안에서 밖을 봐도 그림 같은 절경이 펼쳐집니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 입니다. 이곳에서 최초로 촬영을 한 영화는 <아라비아 로렌스>(1962)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나자렛 예수>(1977),<나일의 대모험>(1985),<007 리빙 데이라이트>

(1987),<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쿤둔>(1997),<미이라>(1999),<글래디에이터>(2000),<알렉산더>(2004)등 수많은 대작들이 이곳에서 촬영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것이 카스바 입니다.
담배연기 희미하게 서려 있는 카스바에서 외로움 달래려고 춤추는 슬픈 여인을 찾을려고 했다간 여러분들은 카스바의 미로에 갇혀서 평생을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포스팅을 보신 이웃 분들은 그럴 염려는 없겠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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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지역에는 피부가 좋은 미녀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미녀의 상징인 것도 지중해 연안의 미용법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하면 생각나는 것이 올리브입니다. 식용은 물론 미용으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미용 도구가 바로 천연 올리브 비누입니다. 모로코, 터키를 비롯 지중해 연안 국가들에는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대중 목욕탕인 함맘이 많이 있으며 이곳에서  천연 올리브 비누를 사용하여 피부 미용을 가꾸는 전통이 현재 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천연 올리브 비누의 사용법과 피부미용의 효능에 대해 설명을 드립니다. 


천연 올리브 비누 사용법

1. 먼저 간단히 샤워를 합니다.
2. 올리브 비누의 젤을 적당한 양으로 전신에 바른 후 약 5-10분 정도 기다립니다.
    이 때, 사우나에 들어가서 땀을 푹 빼 주셔도 좋습니다.

3. 미지근한 물로 몸을 헹군 후 때밀이 수건에 올리브 바누를 다시 적당량을  바른 후에 몸의  때를 골고루 벗깁니다. 

 


5. 다시 한번 깨끗하게 샤워를 합니다.

6. 여러분들도 '카사블랑카' 올리브 비누로 목욕한 후 탄력있고 아름다운 피부를 간직할 수 있을 겁니다. 은은한 천연 아롬향이 피부에 남아 상쾌한 기분을 느낄것입니다.


카사블랑카 천연 올리브비누 사용 후 효능 효과

 


올리브 비누는 여드름에도 좋고 아토피성 피부에도 좋다고 합니다. 특히 각질 제거에 뛰어 나고 제품 포함된 올리브 오일의 탁월한 보습 성분으로 인해 피부의촉함이 오래도록 유지 되는 것을 느끼실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올리브 비누의 단점이 녹고 냄새가 별로 좋지 않다고 하는데 카사블랑카 제품은 향균, 진공 포장으로 사용 보관을 용이 하게 하였으며 천연 아롬 추출 향을 가미하여 사용 은은한 아롬향을 만끽할 있습니다.
(향별로 로즈마리, 라벤더, 유칼리투스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실제 올리브 비누 사용 후 효과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조카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수년간 아토피 피부로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카사블랑카 천연 올리브 비누를 사용하고 6개월 만에 아토피 피부병 증상이 없어 졌습니다.

 

친구가 항상 머리 비듬으로 고생을 했는데 비누를 사용하면서 비듬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어제부터 비누를 사용해 보았습니다. 천연향이 진한 거가 맘에 들었고 씻은 후에 오일이 남아있는 촉촉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깨끗이 잘 지워지기도 하기에 친구들한테도 나머지 두 개를 선물할 예정입니다.
머리를 감아봤었는데 샴푸나 린스보다도 식초를 희석한 물로 헹구니 머리결이 한결 부드럽고 좋았습니다. 좋은 제품을 쓰게되어서 고맙습니다.

아이디 jane -


비누로 머리를 감은 후에 식초희석한 물로 헹궈주면 한결 부드럽습니다 (샴푸나 린스보다도 식초물 강추) 정전기 현상도 일어나지 않고요...

일을 하면서 손을 자주 씻었더니 건조하고 까칠하여 매번 핸드크림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비누로 씻었더니 손이 촉촉해져서 크림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좋은 제품 많이 팔리시길 바랍니다.

- 아이디 jinxingyu -


여러분들도 천연 올리브 비누 카사블랑카 한번 사용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어떠신가요?

많은 분들이 문의를 해주셔서 공지(링크 클릭)란 올립니다.

천연 올리브비누 '카사블랑카' 구매 연락처

이메일: trustmaroc@hotmail.com
핸드폰: 010-5393-9318  (국내 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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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올리브 비누 '카사블랑카'는 포장 중량 200그램으로 시중에 나오는 튜브팩 중 가장 큰 사이즈 포장입니다.  카사블랑카, 200그램 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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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일 오늘부터 한달 가량 출장입니다.

그래서 출장 여정에 대해 간단히 적어 보겠습니다.

먼저 아침에 집에서 출발(08:00)을 해야 하는데 몇 가지 남은 일을 처리 할려다 좀 늦었습니다. 출발 08:40. 부랴부랴 차를 꺼내 공항으로 향합니다.

출근 시간이라 중간에 많이 막히더군요. 큰일 났다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안개가 자욱하게 끼였습니다. 보통 시간 때이면 40분이면 가는 길인데 좀 막히는 것 같더군요.

시내 신호 막히는 곳 지나 고속도로로 접어드니 차가 좀 덜 막힙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140-150km 이상 달렸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더군요. 비행기가 이륙을 할 수 있을려나 하는 우려가 들 정도입니다. 

공항에 도착 09;15, 차를 입구에서 넘겨주고 바로 공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공항건물 입구에서부터 검문이 심합니다.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일반 환송객들은 공항 청사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더군요.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아마 VIP가 뜨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모여 있는 인파를 헤치고 청사 안으로 진입, 가방 검사대와 경찰의 검문을 거쳐서 아주 빨리 달려 2층 출국장으로 갔습니다.

 

에어 프랑스, 파리행 보딩을 28번에 하는군요.

28번에 가니 보딩 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제가 마지막 보딩객인 모양입니다.  09시 30 보딩 완료. 이젠 돠었다. 비행기는 놓치지 않게 되었네.

조금만 서둘러서 예정대로 08 나왔으면 여유롭게 보딩을 했을 텐데 서울서 연락을 받은 일을 협의 하는 바람에 그만 조금 늦어져 버렸습니다.

암튼 안심

출국장으로 들어갑니다. 역시 입구에 경찰이 패스포트와 보딩 패스를 검사합니다. 그곳을 통과하자 세관검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관원 아저씨, 외환소유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캐 묻습니다. 노 달러,노 유로, 낫씽,,ㅎㅎ

정말 아무것도 없냐고 세관원아저씨 반문합니다. 낫씽 !!

 

모로코에서 외환을 반출하는 것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1년에 패스포트 하나가 환전해 나갈 수 있는 금액이 2천 유로가 못됩니다.

그래서 관광으로 들어오시는 분들은 반드시 환전 영수증을 챙겨두었다가 출국시 남은 돈 환전하는데 사용하면 됩니다. 우리 같이 현지 거주자들은 이러한 외환규제로 불편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일반 은행 카드도 와환 사용 한도를 받기 위해서는 특별히 외환청에 허가를 받는 특별한 절차를 받아야 합니다.  좀 번거롭지요.

암튼 패스포트 컨트롤 합니다. 창구 아저씨, 놀랍게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합니다,. 오우, 한국말 잘하네요,하니까 즐거워 합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네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주 다녀서 출국심사 하면서 한마디 배웠나 봅니다. 그래도 간단하지만 이런 인사 듣는 것, 기분 괜찮습니다.

출국심사 도장 꽝 ! 받아 들고 들어가니 또 검색대, 검색대에 노트북 꺼내서 따로, 자켓 벗어서 따로 넣고 통과대 들어가니 경찰 아저씨 또 검문 합니다.

외환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 없다니깐 자꾸 물어 보네요. 명절 잘 쉬었나고 물어보네요. 명절이야 잘 쉬었지요. 양고기도 많이 먹었고,,,,

검색대 들어간 가방 열어 보라고 하시네요. 무슨 검색을 이렇게 자주 하는것인지,,,, 가방 지퍼 다 열어 줍니다. 근데 보지도 않고 도로 닫으라고 하네요. 뭐여 시방,,xx 훈련 시키는 거여 뭐여 지금

암튼 패스하고 게이트 찾아 들어갑니다. 30번 게이트, 모두 모여 앉아 있네요.


그 앞의 면세점 한 컷, 그리고 내부 한 컷 찍어 봅니다.
한산합니다.


모로코 전통 여성의류인 젤라바를 파는 가게가 눈에 뜨이네요.

마네킹이 예쁜 모델처럼 젤라바를 입고 있습니다,.

젤라바는 남자용 여자용의 구분이 있으나 대부분의 스타일은 헐렁한 원피스 에 삼각 모자가 달려 있습니다. 예전에는 젤라바의 옷의 색상따라 배우자의 유무를 나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삼각형 긴 모자는  핸드폰이나 작은 손지갑등을 넣어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창 밖의 풍경도 한번 찍어 보았습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웬일로 나들이를 했을까요? 여행을 좋아하는 녀석인가 봅니다. 공항에까지는 인가가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 어디서 온 녀석일까요?

주인을 잃은 고양일까요? 궁금증이 이네요.

 

10:20, 탑승 시작, 내 자리는 06C. 자리에 앉으니 비가 좀 그치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비행기 이륙에는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음료수 한잔 마시고 나니 이륙준비에 들어 갑니다. 10:40분 이륙

에어 프랑스 AF2197 카사블랑카 모함메드 5세 공항 이륙 했습니다.

 

잠시 후에 기장의 안내 방송 멘트,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까지는 3시간소요 될 거라고 하네요.

 

잠시 기다리자 기내식 아침이 나옵니다. 닭고기 찜과 야채,빵이 나왔네요.

입맛이 당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부 집어 먹어 봅니다. 오늘은 아주 긴 여정을 해야 하거든요.

 

식사 후에 따끈한 차 한잔을 마십니다. 그리고 나서 잠시 한잠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니 비행기는 모로코 북부 탄제를 지나 지브로울터 상공을 건너 스페인 영공을 지나 프랑스 영공으로 접어 듭니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였습니다. 잠시 후 하강 하겠다는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구름 사이로 하강하니  잠시 동안 온통 하얀 구름 속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구름아래로 내려 가니 딱 트인 평야지대가 보입니다. 프랑스 입니다.

 

멀리 에펠탑을 바라보며 점차 하강을 합니다.

간간히 비가 내리네요. 프랑스 현재 기온은 11도라고 합니다.

터미널 2E에 도착했습니다. 도착 시간 현지 시간 13:45 (프랑스는 모로

코 보다 한 시간 빠릅니다)보통 서울로 들어가면 터미널 2F로 셔틀버스를 타고 청사를 바꿉니다만 오늘은 북경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터미널은 그대로 2E( 게이트 38), 출발시간 18:55,  거의 5시간을 공항에서 기달려야 합니다. 터미널 E,게이트38 을 찾아가는데 모노레일 기차를 타게 되어 있네요. 그전에 없었었던 것 같은데 새로 설치 되었나 봅니다.

기차를 타고 2분쯤 가니 터미널 E 입구에 다시 내립니다. 그리고 검색대.

연말이어서 그런지 검색이 아주 강화 된 것 같습니다. 검색대 아저씨, 제 여권 보더니 안녕하세요한국말로 인사를 합니다. 이제는 세계 어느 곳을 가던지 한국말 인사를 듣는게 어렵지 않게 되었네요.ㅎㅎ

그 아저씨, 내 뒤에 따라오는 청년에게 안녕하세요하네요. 그 청년, 중국 사람인데요하니 바로 니하오나오네요.

 

검색대 줄이 길게 늘어 서 있네요. 이 아저씨 내 앞에 있던 여성 분에게 물어 봅니다. 러시아 ? 여성분 그렇다고 하네요. 공항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얼굴을 보고도 국적을 기가 막히게 구별하는 것 같네요.ㅎㅎ

 

러시아, 데낄라 ? 이 아저씨 또 오버 하네요. 보드카 !! , 보드카, 맞아 !

암튼 재미 있는 아저씨네요.

무뚝뚝하고 인상 쓰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좋습니다.

 

검색대 앞에서

앞에 아저씨, 신발까지 다 벗으라고 하네요. 바로 내 앞에 아가씨, 러시아 여성이군요. 역시 부추 벗으라고 하네요. 부츠 벗을려고 제 앞에서  엎드리는 이 아가씨, 주저 않고 벗든지 하시지 그냥 엎드려서 벗네요.(야한 팬티 다 보이네요. 제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습니다.ㅎㅎ

저는 그냥 통과, 검색대 지나 가방,자켓 챙겨 들고 게이트 38로 올라 갑니다.


게이트 38가니 37로 변경 되었다는 싸인이 보이네요.

바로 옆이니 별문제 없을 듯,,,

잠시 면세점을 둘러 봅니다.

파리는 이제 연말 분위기가 나네요. 면세점 앞에 트리가 장식되어 있네요.

그래서 한 컷, 사진 찍는데 중간에 개념 없으신 아저씨,ㅎㅎ

암튼 그대로 찍었습니다.

 

몇 군데 돌아다니다가 인터넷을 할까 했는데  역시,프랑스, 인터넷 라인 사용 할려면 카드를 사던가 신용카드로 결재를 하라고 하네요. 굳이 뭐 지금 인터넷 안해도 되니까,,,ㅎㅎ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인천 공항이 얼마나 서비스가 잘되어 있는지 느껴집니다. 노트북,인터넷 라인 그냥 무료로 사용 가능하지요. 참 좋은 공항입니다.ㅎㅎ

 

인터넷 접속은 못하고 공항 안에 앉아서 포스팅 글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재 시간 12 3 14:40. 아직도 2시간 더 기달려야 하는군요.

 

공항 밖에 에어 프랑스 대기 하고 있네요. 제가 타고갈 비행기 입니다.
 

이번 여정은 카사블랑카(무함마드5)-파리(샤르르 드골)-베이징(서도우)

베이징에는 내일(4) 아침 1145 도착, 도착 후에 셔틀버스(7) 타고 베이징 서부 기차역 까지 가서 고속철로 2시간 타고 가면 시자장(석가장)이 나옵니다. 석가장 에서 호텔 체크인 하면 이글 포스팅 올릴 수 있겠습니다.

석가장 에서는 2박 할 예정입니다. 5일날 아침, 거래선에서 호텔로 픽업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오전 10.

그리고 거래선 회사가 있는 곳(안핑) 까지 승용차로 2시간30분 정도 갑니다.

출장업무 시작입니다. 일이 잘 마무리 되면 6일 아침 일찍 항주로 가는 비행기(국내선)를 타야 합니다.

일단 이곳에서 업무가 끝나면 다시 포스팅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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