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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13 중국 석가장에도 대장금이 있다. 29


다음날 거래선 회사를 방문하여 상담을 마치고 나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식당에서 거래선 회사 직원이 시켜서 먹은 자장면입니다.

한국처럼 짜장을 사용하는게 아니고 육수 국물을 넣어서 말아 먹는 스타일입니다.
한국 자장면 생각이 나서 찍어 보았습니다.

시자장(shijazhuang-石家庄 석가장) 은
하북성 성도로써 북경에서 남쪽으로 대략 250킬로미터 되는 곳에 있으며 명대에는 원래 노루를 잡는 현의 한 촌락에 불과했는데 1902년 철자의 대규모 건설에 따라 점차 도시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1925년 휴문진과 합해 석문시가 되었고 1948년 석가장시로 이름을 정햇다고 합니다.

 

하북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나  다른 성에 비해 대외개방이 다소 늦게 시작되었지만 북방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외국인 투자가 점차 활발해지고 있으며 철도가 날라온 도시라고 부를 정도로 철도 교통의 요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석가장시는 관광자원으로는  서백파 중공중앙의 옛터와 안제교 융흥사 등 9곳이 이미 국가급 문화재 보호기관에 속하여 있다고 하네요. 창암산, 장석암은 국가 중요 풍치구역이고 또한 성급 중요 보호문화재와 풍치구역이 75개 곳에 다다를 정도로  석가장시의 관광업은 잠재력이 크다고 합니다.

 

베이징-홍콩을 이어주는 징지우철도가 스자좡을 경유하고 있으므로 교통이 편하여 경제무역교류에 용이하고  특히 국가 급 개발구인스쟈좡 고신기술 산업기발구는 중국에서 가장 일찍 선정된 27개 첨단기술 산업개발구역 중 한곳으로서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에 특혜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친황다오 항구를 경유한 중개무역 및 면세수출입이 가능하여 국내 및 외국 투자자들의 큰 중시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석가장에 대한 자료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석가장은 일제하 당시에는 무려 3만명의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었다는 도시입니다.

중일전쟁 이후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화북지방으로 이주하는 우리 동포들의 수가 대단히 많아져서 1940년 무렵에 북경과 천진에는 10만여명, 석가장에는 3만여명, 신향에는 8000여명, 태원에는 5000여명, 청도와 제남에는 각각 1만여명의 있어 화북의 한국인 동포들만 해도 무려 20만에 달하였다고 합니다.(항일무장독립투쟁사,511).

 

위키 백과에 다르면 관색(關索) 또는 관삭은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로, 관우의 셋째 아들로 나온다. 형주에서 관우와 함께 분전하다가 관우가 생포되자, 석가장으로 피하였다. 제갈량남만 정벌에 따라 나섰고, 이후 북벌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삼국지연의를 몇 번 읽은 사람들이라면 관우와 장비보다도 조운을 더 좋아 하기도 하지요.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관우와 장비의 활약 이   더   용감무쌍 했지요. 또한 조운은 마초, 황충, 위연에게도 미치지 못했는데 어째서 그를 더 좋아할까? 그것은 조운이 진솔하기 때문일 터이다.
조운의 자는 자룡(子龍)이다. 상산(常山) 진정현(眞定縣) 출신으로 현재의 하북(河北)성 석가장(石家庄) 근처의 정정(正定)사람이다.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무인으로서의 웅장함과 위엄을 지니고 있었다. 생각도 올바르고 행동도 단정했다

밤에 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주변을 나가보았습니다.

주변에는 호수 공원이 있고 마오쩌둥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이네요..

마오쩌뚱이 국민당에 밀려 숨어서 3대 전략을 가다듬은 곳이 시자장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롭게 전열을 가담은 마오쩌뚱은 중국 공산당을 이끌고 국민당과 다시 싸움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오쩌둥의 동상을 세워 두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이 주말의 밤을 공원에서 즐기고 있는게 참 발랄해보였다. 마오쩌뚱도 이 아이들에게 역사를 이끌었던 위대한 위인으로 기억이 되고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에 근래 보기드문 폭설이 내려 7cm이상의 적설량을 보여 시내 주요 도로가 큰 혼잡을 빚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햇볓이 들지 않는 음지쪽으로는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추운 날씨임에도 주말의 저녁 시간대라 많은 사람들로 거리는 북적이고 있더군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고 있는 양쪽 귓볼을 사정없이 잡아 댕기는 것 같았습니다, 영하 10도 정도의 체감 온도로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하더군요.

근처에 대장금이라는 한국 식당이 있어서 저녁을 먹기로 했습니다. 시내의 한 쇼핑몰의 2층인데 주변에 한글 간판으로 된 가게들이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한글 간판과 중국어 간판이 동시에 걸려 있는 가게 들이었습니다. 이곳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더군요. 대장금 식당은 북경에 본점이 있고 여러곳에 지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문화의 힘이라는게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드라마 판권 하나를 파는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음식,그리고 대한민국의 브랜드를 파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랫동안 한국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나의 입맛에는 메뉴에 있는 모두가 맛있어 보였습니다.
장어 덮밥과 설렁탕을 시켜서 먹었는데 음식맛은 괜찮았습니다. 

대장금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주변을 들러보면서 사진을 몇장 찍었습니다,추워서 덜덜 떨면서도 블러그에 올리겠다는 일념으로 참고 찍었습니다.ㅎㅎ

시자장의 주말 밤 풍경은 유독 레이저 빔을 많이 쏘고 있더군요, 무슨 행사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건물들에는 네온싸인으로 장식을 해두어 휘황찬란한 야경이 참으로 현란하게 빛나는 밤이었다.
 

제가 묵었던 호텔 입니다.

다음날은 비행기편으로 항주로 출발해야 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빨리 남쪽 지방으로 가야 겠습니다. 
시자장 이야기는 여기까지,,,,,,,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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