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white house) 이 카사블랑카 ?

 

카사블랑카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어 아이디를 카사블랑카로 했고 신제품 올리브 비누도 카사블랑카브랜드로 출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카사블랑카에 살면서 도시 이름을 왜 카사블랑카라고 했을까?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 기회에 간단히 카사블랑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 "하얀집" 아랍어, دارالبيضاء다를베이다, 영어로 white house, 한마디로 백악관이지요)
 
대서양에 위치한 모로코의 최대 도시 입니다.. 위도는 33°32N 7°35W.로 우리나라와 위도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습니다만 지중해성 기후라 평균 기온이 겨울에는 섭씨 15, 여름에는 섭씨 24도로 1년 내내 쾌적한 기후를 자랑 합니다  때문에 여름이면 이곳의 해안은 북아프리카의 밝은 햇빛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푸른빛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 따사로운 햇살을 벗삼아 한가로이 낚시질하는 사람들, 푸른 야자수가 어우러진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휴양객 들로 인산 인해를 이룹니다.


2005 9월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카사블랑카"의 인구는 385만 명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2009년 현재는 500만명이 넘을 걸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그 중에 저희 가족도 인구 센서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ㅎㅎ

해변의 모습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모로코의 주요 항구 도시이며 거의 대부분의 해상운송의 화물들이 카사블랑카 항에서 하역되고 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상업 도시 입니다. 아프리카 전체 대륙에 있어 6번째로 큰 도시이며(5개 큰 도시는 어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로코의 비지니스의 핵심 도시이기 때문에 모로코의 경제 수도로서 중앙은행 및 기타 모든 은행의 본점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립 모로코 해군의 제1해군기지이기도 합니다. 행정 및 정치 수도로는 북쪽으로 90km정도 떨어져 있는 라바트가 국가의 수도입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 있는 세계 유수의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고 있고 주요 산업 시설들을 유치하고 있는 손꼽히는 경제 허브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카사블랑카 지역은 적어도 7세기 까지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이  앙파(ANFA HILL)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앙파 지역은 구릉지 형태의 작은 산이라기 보다 언덕 정도 라고 해야 맞을 듯 싶습니다.  이곳이 카사블랑카의 시발점인 곳 이지요. 지금은 고급, 대형 빌라들이 있고 왕궁도 있는 지역입니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곳이 앙파힐, 오른쪽 너머가 대서양 바다가 보입니다.

 

앙파 언덕을 오르면, 대서양이 펼쳐져 그 아름다움이 각별하여 영화에서도 잘 알려진 풍경이며 점점이 이어지는 별장들은 거대한 숲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언덕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앙파호텔은 1943년에 카사블랑카 회의의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앙파힐

그러나  베르베르 원주민들은 1068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정복 될 때 까지 평화롭게 앙파 지역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지요..

14세기에는  마리니드 왕조에 점령당한 후 부터 앙파는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15세기 초기, 이 지역은 해적들을 위한 안전한 은신처 항구로서 알려져 많은 해적들이 활동을 하며 포르투갈의 해상무역을 위협하고 심지어는 포르투갈 연안 마을까지 해적들에 의해 침탈당하자 1468년 포르투갈은 군대를 보내 해적의 본거지를 파괴하기에 이릅니다.

그후 포르투갈은 1515 폐허가 된 앙파 지역을 이용해 군대 요새를 세우기 시작 했습니다.그러자 자연히 요새주변으로 마을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곳 주변에서 자라났던 그 마을은 포르투갈어로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앙파 언덕 요새에서 바다를 보면 푸른 바다 위에 하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카사블랑카라고 했다고 합니다.

파도 치는 해변

1580년과 1640년 사이, 카사블랑카는 스페인령이 되었다가 다시 포르투갈령이 되기도 하는 등 유럽 식민주의의 영향아래 놓였으나 1755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자 포르투갈은 이 지역을 완전히 단념하게 됩니다..

그 후 앙파 는 이말리 이븐 샤리프의 손자인 술탄 모하마드 압달라(1756 ~ 1790)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이 당시 이슬람 사원등이 건립되는 등  도시로서 재건이 되기 시작하여 19세기 유럽과 모로코의 주요  교역 항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때  아랍어로 الدار البيضاء  다를베이다(하얀 집)과 스페인어로 '카사 블랑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직물산업이 왕성하게 일어나자 직물산업에 필요한 원료인 양모의 주요한 공급처가 됨에 따라 카사블랑카는 본격적으로 인구가 늘기 시작 했습니다. (현재에도 모로코의 도시 주변을 나가보면 많은 양의 무리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모를 수송하기 위해 많은 선박들이 드나들게 됨으로써 많은 유럽인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범죄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되지요.

이때 모로코에 범죄인 석방의 대가로 유럽에서 많은 차와 설탕을 모로코 왕실에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왕실에서 모로코 왕실에 다기세트를 보내게 되는 것도 이 무렵입니다. (앞의 포스팅 사하라에 차가 전래된 이유에서 설명이 있었지요)

 그 후 카사블랑카는 프랑스의 식민지 치하에 놓이게 되고 이때부터 카사블랑카는 항구로서의 규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후 1921년대에는 주변의 판자촌 등을 재개발 하는 등의 도시정비 정책을 폄으로서 110,000명의 인구를 거느리는 최대의 도시가 되게 됩니다.

 시내 모습 (왼쪽으로 쭉 가면 카사블랑카 항구가 있음)

1907 6, 프랑스가 항구 근처에 있는 묘지를 통과하여 지나가는 경편철도 (便)

를 건설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거주자들은 프랑스인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등 대규모 반 프랑스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자국민의 안전과 치안유지 및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구실로  군대를 상륙시켰고 군대는 수 많은 인명을 살상, 도시 파괴를 자행하면서  카사블랑카를 장악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프랑스는 카사블랑카, 모로코를 식민지화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유엔 광장, 법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 후 1942년 그 유명한 험프리 보가트,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 가 헐리우드서 상영됩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카사블랑카에서 촬영한 것은 아닙니다.

헐리우드에서 촬영되었지요. 영화에 나오는 배경은 모두 액자 그림으로 처리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주연 배우로 험프리가 아니고 로넬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군대에 징집되는 바람에 험프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화 '카사블랑카'
1943
년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1943년 워너브라더스 제작. 흑백 영화로 M.커티스가 감독하고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1957년 개봉되었다. 파리가 나치스에 점령되었던 1940년대에 당시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무대로 한 남자의 옛사랑에 대한 미련과 희생을 그린 미국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번에 한번 기회를 잡아서 다시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반전, 반제국주의 영화가 상영되었듯이 1940-50년대의 카사블랑카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주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카사블랑카 회담

카사블랑카는 제2 세계대전 동안 연합군의 중요한 전략적인 항구였으며

유럽지역이 모두 전선화 되자  군사작전을 위하여 모든 미국의 항공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지역이었던, 규모가 큰 미국 공군기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43년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가 전쟁의 진행 상황을 협의하고 논의한  카사블랑카 회담 이 이곳에서 개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회담 장소인 호텔이  앙파 언덕 위에 있는 호텔 입니다.


카사블랑카의 랜드마크는 하산 2세 대 사원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하산 대 사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슬람교 사원으로, 지난 1994년 약 7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6000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25000명이 동시에 예배 볼 수 있는 규모이며, 높이가 200m로 세계 모스크 중 가장 높다. 사원 광장은 10만 명 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서 주변에는 도서관 및 부속 건물들을 단장 하고 확장 하는 공사를  아직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건물 전체가 대리석으로 된 사원 외벽에는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듯 유약 바른 푸른색 채색타일이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라비아 무늬로 모자이크되어 있으며 웅장한 외관뿐 아니라 모로코식으로 장식된 사원 내부 장식도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합니다. 내부 장식을 위해 전국의 공예가 33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정성과 노력이 이렇게 웅장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아라베스크 예술의 극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여타 중동의 사원이나 다른 건축물들을  치장하는데에도  많은 모로코의 장인들이 활동하고 있는걸로 보아 모로코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예술적 혼은 고대로 부터 이어져오는 유구한 역사와 장인 정신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어울어져 이루어진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카사블랑카의 역사를 오늘은 공부를 했습니다.
좀 지루 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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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같이 일하던 직원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너무나도 건망증이 심했습니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보내면 항상 한두개씩 빼먹고 사오거나 어떤 때는 아예 사오는 것 자체도 잊어버리고 다시 와서는 무엇을 사야 하는지 물어 보고 다시 가기도 하였습니다.

참 건망증이 심한 친구였습니다.

 

하루는 대형 마트에 같이 가서 쇼핑을 하였습니다.

물건을 다 구매한 후에 카트를 끌고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주차장을 이쪽으로 뛰어갔다 다시 저쪽으로 뛰어 갔다 하더니 허겁지겁 저에게 달려 와서는 큰일났다고 하는 게 아닙니까.

왜 그러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 친구 왈, 주차장에 세워 둔 차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차가 없어져 ? 무슨 소리야 ?

차는 바로 우리가 나온 문 앞쪽에 세워 두었거든요. 그리고 그 차 앞에서 차가 없어졌다고 하니 참 어이가 없지요.

차 바로 앞에 있잖아, 니 앞에,, 하고 말하니까 이 친구 저한테 웃으면서 하는 대답이 또 걸작입니다.

에-이 ! 자기 몰래 차를 이곳에 갔다 두었다는 것입니다. ㅎㅎ

이 친구 건망증이 이 정도 입니다 .

  

하루는 카사블랑카 시장에 같이 다녀 왔습니다.

같이 여러 군데 다니면서 이것 저것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가게에서 그만 주인아저씨하고 이 친구가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사소한 것 이었는데 말싸움이 크게 번져 버렸습니다..

 

점점 말싸움이 커지면서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는 왕년에 국가대표 배구선수였다” “무시하지 마라하는 게 아닙니까그러자 주인아저씨는 그걸 누가 믿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옛날 팀 사진을 꺼내 탁자위에 탁하고 꺼내 보여 주더군요.(감독,선수들 경기 전에 모두 함께 찍는 사진 있지요)

봐라 ! 여기 사진에 내가 있다

사실 실제로 모로코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이 많거든요. 그리고 그 사진 속에 이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경기 하다가 다쳐서 이빨이 빠져 버려서 지금은 틀니를 하고 있다, 자 봐라 !  하면서 자기 틀니를 빼서 보여 주는 게 아닙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젊은 친구가 틀니를 한 줄은 몰랐었거든요. 그리고 왜 시장통에서 싸우면서 틀니까지 빼서 보여 주는 것인지 참 ,,,ㅎㅎ

 

그랬더니 가게 아저씨도 한 술 더 떠서, “, 너만 틀니 있냐 ! 나도 있다 ! 하면서 자신의 틀니를 뽑아서 이 친구 얼굴 앞에 꺼내 보여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

 

두 사람이 머리 맞대고 서로 자기 틀니를 내보이고 있는 모습 상상 해보세요.ㅎㅎㅎ

 

그러자 주변에서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그만 하라고 하니까 두 사람도 웃으면서 화해를 했습니다.

 

나도 한참을 웃으면서 같이 시장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차를 타고 한 참 돌아오고 있는데 중간에 차 안에서 큰일 났다고 하는게 아닙니까? 또 왜 그래 ? 하고 물었습니다.

이 친구 하는 말이 가게에 자기 틀니를 놓고 왔다는 것 아닙니까?

뭐야 ? 정말 시장 가게에 두고 온 것 맞아 ? 아니면 입 속에 넣어두고 잊어버린 것 아니고,,?

어떻합니까 !  오던 길을 돌아
차를 돌려서 시장에 다시 가서 틀니를 찾아 왔습니다. 다행이 가게 아저씨가 잘 보관을 하고 있어서 다시 찾아 왔습니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건망증 아닙니까?

 

서울에 있는 제 친구도 목동에 사는데 하루는 낙성대쪽에 지인의 집에 가족방문을 하였다고 합니다.그런데 가스 불 위에 빨래를 삶고 있던 것을 깜박했다고 하네요. 낙성대쪽에 도착 하고서야 그제서야 생각이 나서 차를 돌려서 부랴 부랴 목동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빨래는 타기 시작해서 집안에 연기가 자욱하더라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불을 끄고 가스 잠그고 하였다는 경험담을 들었습니다. 참 큰 일 날뻔 하였지요.

 

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뇌세포는 30세를 넘으면서 감퇴하기 시작하여 점차 일시적인 기억력의 감퇴현상이 나타난다 합니. 뇌세포의 감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머리속에 처리해야 정보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뇌는 그것을 차단하는 수단으로 단기 기억장애 혹은 뇌의 일시적인 검색능력 장애를 보인다고 하네요..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회적인 현상이거나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기억력 감퇴일 경우가 대부분이며 무기력증처럼 단순한 증상일 병은 아니라고 하네요.

건망증 현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고통,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며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 해결하면 건망증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일시적인 건망증의 발생원인
1>
복잡한 환경에서의 지속적인 스트레스 긴장감으로 뇌가 복잡할
2>
우울 불안한 기분이 너무 오래 지속되고 생각을 집중했을
3>
몸의 피로
4>
떨쳐 버리지 못하고 특정한 생각이나 사건에 집착하는 강박증이 있을
5>
지속적인 흡연, 커피, 음주(술은 뇌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고 기억력 떨어뜨림)
6>
수면 부족
7>
불규칙 활동(문화예술 종사자등)
8>
비타민 결핍
9>
남성보다는 가사에 종사하는 단순노동의 중년여성(단순하면서도 반복되는 일들을 여러 가지 일들은 주의력을 떨어뜨린다)

 

, 여러 이웃 분들도 가끔 건망증을 경험하신 있지 않나요?

 

건망증이 있더라도 걱정은 하지 마시고  무엇보다도 가능한 메모를 하는 습관을 가지는게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발을 열심히 사용하는 것도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건망증을 퇴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이웃 분들은 블로그 포스팅 작업 하시느라 열심히 키보드 치시고 자료 정리하시고 하느라 건망증 걸릴 일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치요?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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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지인이 득남을 해서 마라케시를 방문했습니다.
카사블랑카에 살고 있는 해군장교인데 본가와 처가가 마라케시여서 마라케시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처가에서 하는 모양입니다. 위로 아들 둘이 있는데 늦둥이도 역시 아들로 낳았습니다. 예쁜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합니다.

한국은 아이를 낳으면 100일 잔치를 하지요. 그런데 모로코는 7일 잔치를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때는 4일째 되는 날이어서 잔치는 하지 않고 그냥 축하 방문 하였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기전에 김밥을 먹고 싶다고해서 아내가 여러번 김밥을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 보러가서 예명을 김밥이라 해야 겠구나 했더니 모두가 한바탕 웃었습니다. 그리고 미역을 좀 가져다 주기로 하고 가방에 넣어 두었는데 그만 깜박 하고는 전해 주지를 못했다고 아내가 돌아오는길에 투덜거리더군요.
 
각 국가 마다 산후조리 음식이 다른데 한국은 미역국을 먹지만 모로코는 닭찜 같은것을 먹습니다. 닭을 넣고 여러가지 양념과 야채등을 넣어 찜을 만들어 먹습니다.
자주 우리집에 놀러오곤 해서 미역국이나 김밥등을 아주 맛있게 먹었나 봅니다.

 아이 태어난것을 기념하여 오늘은 모로코 맛보기로  마라케시를 잠깐 소개 하겠습니다.
TV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마라케시는 많이 소개가 되었을것입니다.

"붉은 도시, 핑크빛 도시, 사막의 오아시스 마라케시"

마라케시(Marrakech, 아랍어: مراكش 무라쿠시)는 모로코  중앙부에 있는 아틀라스 산맥 북쪽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남쪽으로 250km정도 떨어져 있고 승용차로는 2시간여 정도 소요 됩니다. 몇년전 부터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어서 아주 쉽게 오가게 되었습니다만 고속 도로 개통전에는 왕복 2차선으로 트럭,승용차등의 왕래가 많아 5-6시간정도 소요 되었습니다.

 1062년 베르베르인이 건국한 알모라비데 왕국의 수도로 건설되었으며, 북중부의 페스 다음가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입니다.  13세기에 페스를 수도로 정한 마리니드 왕조에 정복되었으나, 계속 이슬람권의 서부 지역의 문화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옛 이슬람 시가지는 붉은 색으로 채색된 미로와 같은 시가와 독특한 건물들로 눈길을 끌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마라케시라는 지명은 다른 나라에 이 곳을 대표하는 왕국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모로코라는 국명의 어원이 되었다고 합니다.(아랍어로 모로코 국명이  "마그립"이라고  하는데 서쪽이라는 의미입니다. 실제 지도상에보면 아프리카 대륙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지요)

베르베르 마을의 가옥 모습니다.

고대 모로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의 도시로 사하라 사막이 시작하는 곳이며  '붉은 도시'라 불리울 정도로 흙의 색, 성벽의 색, 건물 벽의 색 모두 황토빛의 색으로 뒤덮혀 있는 모습과 한여름을 제외한 봄 이나 가을 겨울시기에는 아틀라스 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만년설처럼 새하얀 눈 모자를 덮어 쓰고 있어서 에메랄드빛 짓푸른 하늘과 붉은 도시의 건물들과 어울려서 신비롭고 매혹적인 이국의 풍치를 느낄수가 있는 곳입니다.

최근의 도시건축물들 또한 붉은색으로만 건축허가를 내 줄 정도로 도시 미관을 통일 시키고 있습니다. 이 붉은 황토색이 건축물로 쓰이게 된것은 옛날부터 주변에 구할수 있는 건축재료가 적황토흙이여서 그 유래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변 산맥지대의 베르베르 전통 가옥들을 보면 모두가 아직도 적황토를 사용하여 지어져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에 견디고 또한 시각적으로도 눈의 피로를 덜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도 온통 붉은 색입니다.

마라케시는 쿠투비아 사원, 메나라, 자마알푸나 광장,시장,사디스무덤,바히아 궁전 등이 오랜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대표적인 관광도시답게 대규모 호텔,식당등이 많이 있으며 각 지역별 전통 공연,밸리댄스등 여러가지 볼거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몇가지 사진을 올려 봅니다.
            쿠투비아 사원 야경입니다.

            자마알프나 광장 앞에있는 쿠치(마차)
이 마차를 타면 시내를  투어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자마알프나 광장입니다.
             오렌지쥬스 파는 포장마차
             한잔에 3디람(5백원) 하는 쥬스인데 즉석에서 바로 짜서 줍니다.
            아주 신선한 100% 오렌지쥬스, 시장 들어가면서 2잔, 나오면서 2잔씩 마셨습니다. 싸고 신선하고 아저씨 상냥하고,,아주 맛있습니다.

                      아몬드,땅콩,대추야자,무화과등등 종류도 다양하게 팔고 있네요.      

              광장옆 테라스 입니다. 여기서 차나 커피, 쥬스등을 한 잔 하면서 광장을 내려다 볼수 있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 가 봅니다.

               핸드메이드 쟁반입니다. 쟁반으로도 쓰고 장식용 걸개로도 사용합니다.
               여러가지 모양의 장식등 가게입니다.
              여러가지 과자 종류들이 많습니다. 가게 천장을 장식한 문양이 이채롭습니다.
 
               나무 공예품점입니다, 은은한 나무 향 냄새가 흘러 나옵니다.
 
              엿장수 아저씨역시 이곳 시장에도 인기 입니다. 가족 나들이나온 모양입니다.
              딸과 아내에게 엿을 사주시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돌아 오는 길에 찍은 사진 몇가지 올려 보았습니다.
잘 보셨나요? 

Posted by casabla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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