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모로코 북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모로코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는 불법 이주자들로 인한 갈등을 한번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세우타와 메릴리아
15세기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던 스페인 중남부 지역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스페인이 차지하면서 북아프리카 주요 해상 요충지 항구 도시였던 세우타와 메릴리아도 함께 차지한 스페인은 이 두 지역에 대한 모로코의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는 스페인령 모로코 북부 지중해 항구 도시로 EU지역에 해당됩니다.

2. EU로 들어 가는 난민 루트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들어 가는 육로 발칸 루트와 리비아를 거쳐 이태리로 들어가는 지중해 해상 루트 그리고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들어가는 북아프리카 루트가 있는 데 이중에 북아프리카 루트는 국경 검문소를 사이에 두고 모로코와 EU가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유럽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불법 이주자나 난민들이 모로코가 느슨하게 일부러 관리를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8,000여명이 넘는 불법 이주자들이 이번 기회에 세우타로 넘어 간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3. 정치적 배경

모로코 서부 사하라가 모로코 북부를 흔들어서 발생한 성동격서 겪의 정치적인 배경이 작용한 사건으로 이번 사건으로 정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서부 사하라는 1975년 스페인 식민통치 종식후 모로코가 병합하였으나 그 지역에 있는 사흐라위족이 폴리사리오 해방전선을 결성해서 게릴라전으로 모로코에 대항했던 지역으로 알제리와 스페인 두 나라가 이 단체를 지원하면서 알제리, 스페인과  모로코간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1991년 UN중재하에 휴전이 성립되어 UN평화유지군이 파견되어 있으며 2016년 3월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이 지역 방문시 모로코가 서부 사하라 지역을 "점령" 하고 있다는 발언을 한 후 100만이 넘는 모로코 시위대가 항의 시위를 하여 문제가 커지자 3월말 UN의 두자릭 대변인은 반 총장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점령'이란 말이 다분히 개인적이고 즉흥적으로 나왔으며 사려 깊지 않은 발언으로 오해를 사 유감이라고 밝혀 겨우 시위 사태를 진정시켰습니다.
이때 저도 개인적으로 한국사람이라고 모로코 사업파트너들로 부터 계약 취소를 당하는등 불이익을 겪기도 하였습니다만 2020년 미국 트럼프 대통령 임기말 확실하게 모로코의 손을 들어 준 실효적인 영유권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으로 역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입니다.

최근에 스페인이 서부 사하라지역의 폴리사리오 반군 지도자 브라힘 갈리를 스페인 입국과 치료를 허용하자 이 조치에 대한 불만으로 모로코 정부가 국경 통제를 느슨하게 하여 불법 이주자들이 대거 유입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4. 스페인은 국경에 병력을 배치하고 국경을 넘어 오는 이주자들을 도로 돌려 보내는 등의 강경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모로코의 협력 없이는 사태 해결이 원활하게 진행이 되지는 않을것 으로 판단이 됩니다.
양국 정부 외교부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접촉을 하고 있으나 근본적으로 상호 협의를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양국 국왕의 탑다운 방식으로 결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전망들을 하고 있습니다.

카사블랑카-심재석(trustmaro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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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왁 공항서 콘티넨탈 항공의 지연으로 인해 포르투갈 리스본공항에서카사블랑카로 가는 연결편을 놓쳐 버려서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을 경유해서 카사블랑카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마드리드 터미널 1 도착 해서 터미널 4로 이동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 비행편은 이베리아 항공 이었습니다.
오후 5시 55분 출발 하는 비행편이라 아직 보딩 카운터는 열리자 않아서 공항에서 기달렸습니다.
3시 30분경에 보딩이 시작이 되어 보딩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차례가 되어 보딩 카운터에 가서 보딩을 신청하는데 저희 티켓이 컨펌이 안되어 있어서 보딩을 할 수 가 없다고 하네요.  리스본 콘티넨탈 항공에서 발행해서 받아온 티켓이 컨펌이 안되어 있다는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리스본에서 연결편 놓쳐서 마드리드로 돌아서 가게 되는 상황인데 컨펌이 안될리가 없지 않느냐? 이야기를 해 보아도 전혀 들어 주지를 않습니다.
콘티넨탈 항공에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를 않는다고 비행기를 탈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다시 터미널 1으로 환승 버스를 타고 가서 콘티넨탈 창구에 가 보았으나 오전 11시에 문을 닫아 버려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더군요, 
공항 안내 데스크에 가서 콘티넨탈 항공 콜 센터 연락처를 받아 전화를 하였습니다. 국제 로밍 전화로 전화를 하는데 기다리고 기다린끝에 한시간 만에 결론을 내 주는것이 다음날 마드리드에서 푸랑크푸르트를 경유해서 카사블랑카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비행기 티켓은 내일 아침 일찍 공항 콘티넨탈 창구에서 발급 받으라고 하더군요.

리스본에서 마드리드로 왔는데 또 푸랑크푸르트로 가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오늘 체류하게 되는 호텔 바우처를 달라고 하였더니 콜 센터는 호텔 바우처 부분은 해결을 못해 주니 먼저 개인 비용으로 호텔 사용하고 내일 콘티넨탈 창구에 이야기를 하라고 하더군요,

마드리드 공항 근처 호텔에서 일박을 한 다음 아침 일찍 8시경에 공항으로 나가 콘티넨탈 창구로 찾아 갔습니다.
어제 상황을 설명을 하고 티켓을 요청을 하였습니다. 프랑크푸르트 로는 갈수 없으니 마드리드에서 카사블랑카 가는 비행편을 요청 했습니다. 2시간여를 이리저리 수소문 한 끝에 이베리아 항공 13시55분 출발 항공편으로 대기자 리스트로 해서 받았습니다. 자석 확정된것도 아니고 대기자 리스트로 밖에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텔 비용에 대해 문의를 하였더니 콘티넨탈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환급을 받으라고 하더군요.
경황이 없어서 일단 waiting ticket을 받아 들고 터미널4 이베리아 항공 보딩 창구로 갔습니다. 

보딩 창구에 가서 보딩을 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좌석이 문제가 아니라 비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베리아 항공사 직원이 한국 여권은 비자 없이 모로코로 갈 수 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은 모로코와 비자 면제 협정이 되어 있어서 비자가 필요 없다고 누누히 설명을 하였고 내 여권에 찍힌 수 많은 출입국 스탬프를 보여 주기 까지 하였으나 이 직원, 아주 고집 불통이었습니다.

내가 모로코에 거주 하고 있고 모로코 거주 증명서를 보여 주었더니 이번에는 아이들이 문제라는것입니다.
아이들이 미성년자라 거주증을 발급 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으나 그러면 아이들은 비자가 있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아이들 여권상에 있는 출입국 스탬프를 보여주어도 막무가내로 우기더군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던지 여권 심사관에게 전화를 해보던지 아니면 인터넷에 찾아 보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인터넷에서 읽었다는 겁니다. 한국은 비자가 필요 하다고,,,,,, 참 어이가 없더군요.

팀장에게 문의를 해보겠다고 해서 팀장이 창구로 왔습니다. 팀장 역시 정확히 알지를 못하더군요.
그래서 여권을 들고 다른 사무실로 가서 문의를 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한 30여분 지나서 다시 오더니 북한은 대사관이 없어서 확인을 할 수가 없다고 갈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북한이 아니고 남한이다고 했더니 다시 확인을 해보겠다고 가더군요. 다시 30여분 기다린끝에 남한 여권은 문제가 없이 갈 수가 있다고 컨펌을 해주더군요.

작년에도 스페인 입국하면서 똑같은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포스팅에서    스페인 국경 넘다 북한 여권 오인 '황당했다'  말씀 드린적이 있었지요,
이런 남북한 오인 문제가 매번 스페인에서만 자주 일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외교부 장관께서 해외에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하였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유 명환장관은 지난 24일 아세안지역포럼이 개최된 베트남 하노이에서 기자들에게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 이런 정신 상태로는 나라를 유지하지 못한다"며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김정일 밑에 가서 어버이 수령하고 살아야지"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발언이 실언이었기를 바랍니다만 외교부 수장으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이런 쓸데없는 남북 대치 구도를 하루빨리 해결 하지 못하는 서글픔이 앞서곤 합니다.

외교부에서 좀 더 대외 외교적인 국가 홍보, 특히 스페인에 좀 더 정밀한 대한민국 관련한 자료 제공과 공항및 항공사 직원들에 대한 교육,홍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들더군요.

하루 속히 남북한이 하나가 되어 남북한 여권 관련하여 여행 다니면서 더이상 오해나 문제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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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카스바에 대해서는 이미 잘알고 계시지요.
(
이전 포스팅: 카스바의 춤추는 여인은 어디로 갔을까 ?  
http://casablanca90.tistory.com/36
)

카스바에 아릿따운 여인만 떠올리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네요 지금.ㅎㅎㅎ

(아니면 카스바가 무슨 아이크림 인가 아니면 어디 맥주 파는 곳인가 하시는 분들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이전 포스팅들에서 보셨다시피 성곽도시 혹은 요새화된 도시를 카스바 라고 하지요.

 

모로코 수도 라바트를  방문하시게 되면은 역시 빼놓고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이곳

카스바 우다이야(the Kasbah des Oudayas) 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카스바 우다이야를 3회에 걸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카스바 성곽/- 모루 카페 와 카스바 골목길/하-안달루시아 정원) 


일명  도심 속의 또 다른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서양과 부레그레그 강 포구의 높은 절벽위에 요새처럼 세워져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게 보입니다. 

12세기 알모하드 왕조시대에 건축 되었으며 원래 이름은 메흐디야(mehdiya)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스페인 정벌을 위한 성전에 참가하는 전사들의 전초기지로 사용 되던 요새 도시였습니다. 라바트라는 도시명이 유래하게 되었던 강건한 승리를 쟁취하다(Ribat El Fath) 라는 슬로건하에 스페인 정벌에 나섰던 전사들의 승리를 다짐하는 승리의 요새였던 것 같습니다. 이 승리의 요새를 전초기지 삼아 실제로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과 지중해 연안을 500여년간 지배를 하게 되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게 되는 강건한 승리를 만끽하게 되었으니 역사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의 성전에 참여했던 전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듯 망루위의 대포가 금방이라도 불을 뿜을 듯이 아직도 그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카스바 정문쪽에서 본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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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동안 스페인과 지중해 연안을 아우르는 광대한 제국의 영토와 권위를 자랑하던 제국의 영화는 영원 할 수가 없는게 역사의 순리인 것 같습니다.

 

카스바 성채와 라바트 시내-(중간에 하산타워가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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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를 지배하던 이슬람세력(안달루시아)들이 기독교 세력에 의해 축출되면서 모로코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면서 이곳의 이름은 카스바 안달루스(Kasbah Andaluse)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정벌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최전선의 요새 도시가 스페인에서 넘어온 무슬림 피난민들의 마지막 정착지가 되는 역사적인 현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카스바 주변을 복원하는 공사가 한창중입니다.

이런 연유로 당시에 가꾸어졌던 성안의 정원이 안달루시아풍의 정원이라고 해서 안달루시아정원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다음 포스팅에서 올릴 예정임)

 

우다야 정문( bab al oudaya)

그리고 1833년 페스의 부족인 우다이야(Oudayas)가 라바트로 옮겨오면서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카스바 우다이야(Kasbah des Oudayas)로 불리게 되면서 현재까지 이르게 됩니다. 어떠셨나요?   -다음 포스팅에도 카스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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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라는 북아프리카의 관문인 탄제에서 남쪽으로 35km 떨어진 모로코의 북부의 작은 도시입니다.
오늘은 카스바 성채 사진을 먼저 올립니다.

바닷가에서 본 카스바 성곽(10여m이상의 높이로 도저히 올라 갈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음)
왼쪽 끝 상단 성곽에서 보는 석양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던데 시간이 없어 석양까지는 모지 못햇음)


기원전 1500년에 페니키아에 의해 무역항으로 건설되었으며 15세기에는 포루투갈의 식민지로 속해 있다가 16세기경에는 스페인 보호하에 곳해 있다가 1692년에 모로코로 귀속되었다가 19-20세기에는 주요한 해적들의 전초기지 항구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1911년에는 또다시

  시내 입구(밥 호마르)

스페인이 Asilah를 포함, 그들의 보호령으로 모로코의 북부 지역을 차지 하게 되었으나 1956년에 최종적으로 모로코에 반환이 되었습니다.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있으나 지중해성 기후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으로 특히 여름철에 아름다운 해변 리조트와 깨끗한 비치,지중해풍의 하얀 벽들로 지어진 집들과 푸른 에메릴드 바닷빛을 닮은 벽들로 치장되어 있는 메니나(구 도심)는 이국의 흥취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곳입니다.

 

알카므라 타워(가장 높은 전망대)

특히 8월부터 열리는 거리축제는 좁은 옛 도심의 골목 골목길의 벽에 다양한 거리 화가들의 수많은 그림들로 거대한 골목길 화랑으로 꾸며지게 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아실라 항구
옛 해적항의 영화를 되찾으려는듯 제법 규모가 있는 선박을 건조하고 있는 조선소

완벽하고 견고한 성곽으로 요새화 되어 있는 카스바

성문 이외는 전혀 진입을 할 수 없도록 요새화 되어 있습니다. 
출입구도 2중 삼중으로 되어 있어 출입을 철저히 통제 하기 용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밥 알바흐르)
성곽 안쪽 뜰에서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군요.

성곽 외부는 세월의 연륜을 느낄수 있는 가로수가 보초를 서고 있는 듯 합니다.
망루가 성곽 구석 구석에 세워져 있습니다.
성곽 요새 밖에는 신 신가지가 맏대어 있습니다.

포르투갈에 의해 설계되고 지어 진 카스바 는 완전한 요새로 바다로 부터의 침공에 대비 하기 위한 방어 성채 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성채를 기준으로 하였으며 다음 포스팅은 성채 내부 도심 골목길을 중심으로 포스팅을 올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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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수도 라바트에는 도심에 왕들의 무덤이 있습니다.

투루하산(하산 탑)이라는 곳입니다.

이번에 김 형오 국회의장께서 지중해 연안 3국 방문을 하시는데 이곳을 방문하여 헌화하고 묵념하시는 모습이 뉴스에  나왔더군요. 

이 건물은 현 모로코 국왕(모함메드 6)의 할아버지인 모함5-(모로코 독립을 이끈 영웅) 를 대리석관에 안장해서 중앙에 안치해두고 있으며 좌우로는 큰아버지와 아버지(하산 II)의 관을 안치해 두고 있습니다.

내부 천장 모습입니다.
말을 탄 근위병들이 사원 주변을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이 무덤 건물 앞쪽에 위치한
라바트 하산탑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의 기념비적인 탑으로 베르베르왕조인 야꿉 알 만수르가 1195년에 건축을 시작했던 장대한 모스크의 첨탑입니다. 건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고 거대한 이슬람 첨탑과 이슬람 사원으로 설계되고 건축을 할 예정이었습니다만  4년 후 야크브 알만수르가 사망하면서 공사가 중단되어 현재까지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실제 탑의 높이는 86m 높이로 설계되어 있으나 현재는 44m까지높이로 미완의 절반인 채로 서 있습니다.

 

특히 이 첨탑의 내부는 계단이 없이 완만한 경사로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이슬람에서 예배 시간을 알리기 위해 무앗딘(Mouaddine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맘) 이 걸어서 혹은 말을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는 첨탑이지만 건축물의 화려한 외형은 물론이고 정교한 건축물의 구조 때문에 현재까지도 많은 분들이 이 첨탑과 사원 터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 탑의 앞쪽 광장에는 20,000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원을 지었으나(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외부 면적) 1755년 거대한 지진으로 삼나무로 지어졌던 지붕과 흙벽들은 무너져 기둥으로 썼던  돌기둥만 300여개 이상 남아 있으며 그 기둥의 높이는 3.5M, 두께는 어른 2-3명이 둘러 안을 수 있는 정도의 두께로 이태리에서 가져온 대리석을 사용 하였다고 합니다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관리 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당시 12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높고 ,가장 거대한 규모의 ,첨탑과 사원을 건설하고 지휘했던 야꿉 알 만수르는 누구일까요?

 

그는 당시 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와 서부 아프라카를 지배하던 광대하고 강성한 무슬림,베르베르 왕조인 알모하드 왕조의 국왕이였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라바트 시내의 유적지를 보면 우다이야 카스바(성채) 와 셀라 라는 로마 유적이 있는데 당시 야꿉알 만수르 왕때 재건하고 증축해서 사용하였다고 하니 당시의 번영과 세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원과 첨탑을 디자인 했던 사람은 건축가 자비르
(Jabir) 라는 사람이였는데  마라케시에 있는 쿠투비아 사원의 첨탑과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에 붙어 있는 히랄다 (Giralda) 탑을 디자인 했는데 그 모습이 하산 탑과 똑같은 디자인으로 설계되고 건축 되었다고 합니다. 이 히랄다 타워는 이슬람 왕조가 물러나고 스페인 왕조가 들어서면서 무적함대(Armada)로 유명한 스페인의 절대 군주 펠리페 2(Felpe II)때인 1568년에 와서야 종루와 꼭대기에 풍향계가 설치되어 현재 세비야 성당의 종탑으로 사용되어 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페인어로 풍향계가 히랄다(Giralda)인데 풍향계(Giralda) 가 있는 탑이라고 해서 히랄다 탑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산 탑과 쿠투비아 사원 탑,히랄다 탑을 비교 해보겠습니다.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타워
그리고 이 탑의 디자인은 
 이후 세계적으로 많은 건축물들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쿠투비아 사원 탑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히랄다 타워 종탑
             스페인  University of Puerto Rico's Río Piedras campus 시계탑
                         뉴욕 메디슨 스케어가든(현재는 파손되어 보존이 되지 않음)

                      미국 캔사스 의 히랄드 타워
미국 시카고, 미니아폴리스  Milwaukee Road depot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리 빌딩             

모로코 라바트에 있는 하산 타워가 위의 모든 탑들의 할아버지라고 하겠습니다.
 모로코의 탑이 스페인, 미국의 유수의 도시에 있는 유명한 건물 타워의 기준이자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역사의 흐름과 건축술의 전달 경로가 자못 관심과 흥미를 끌게 합니다. 여러분들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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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런던을 처음으로 방문 하였을 때가 92년도 12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영국 하면 EPL로 인해 박지성,이영표(사우디 리그로 가 있지요)설기현,조원희,이청룡 선수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아주 가깝게 느껴지는 나라이지요.


영국 하면 런던포그버버리 코트 만 있는 줄 알고 있었던 시절입니다.

카사블랑카에서 비행기로 영국 히드로 공항까지 3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갈때는 비행기로 3시간 소요되는 길을 올 때는 3 4일이 소요 되었습니다.

 

12월의 런던은 명성답게 안개가 참 많이 그리고 자주 끼곤 하더군요. 요즘도 물론 그럴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런던에서 업무를 마친 다음에 차를 가지고 모로코 카사블랑카 까지 가기로 하였습니다.

런던 출발 할 때가 12 24, 유럽 전체가 크리스마스 연휴에 들어가던 날입니다.

런던에서 파리까지는 500 km 6시간이상이 소요 됩니다.

 

아침10시경 런던을 출발하여 도버해협을 페리선으로 건너왔습니다.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만 1시간 정도 소요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로 철도가 해저 터널로 연결이 된것 같더군요,어제 뉴스 보니 유로 철도도 폭설로 운항 중단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공항은 몰론 말 할것도 없고요, 지금 유럽도 폭설로 몸살을 앓고 있네요.)


프랑스 깔레항에 도착해서 좌고우면 없이 바로 파리를 향해 출발 했습니다
.

칼레에서 파리까지는 잘 닥여진 고속도로를 따라 파리를 찾아가는 길은 간단하더군요. 한국처럼 경부선 고속 도로에 올라서면 서울쪽 표시판만보고 달리면 서울이 나오는 격입니다.

 

프랑스는 고속도로가 파리를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쫙 펼쳐져 있습니다.

그래서 파리로 들어가기는 참 쉬운데 파리에서 빠져 오는 것은 좀 어렵더군요.

 

파리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 다 돼어 갑니다.

일단 주유소에서 개스를 채우고, 물론 당시에도 셀프 서비스입니다.

주유소 직원에게 행선지를 물으니 거의 영어를 못하더군요. 저 또한 당시에는 불어를 전혀 못했을 때 입니다.

 

당시 알고 지내던 파리 교민 회장님을 만나야 하는데 파리 도로 사정을 모르니 참 난감하더군요. 역시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에서 겨우 겨우 물어서 회장님댁을 찾아 간 기억이 있습니다.

파리는 도로사정이란 어찌 그리 일방 통행길이 많은지, 비슷비슷한 골목길에다가 구불 구불 일방 통행길에 잘못 들어가면 그야 말로 방향을 잃어 버리고 말더군요.

 

옆에 같이 동행한 일행이라도 있으면 지도 책을 보면서 차근차근히 찾아 갈 수도 있을 텐데  홀로 차를 몰고, 그것도 영국차량이라 핸들이 오른쪽에 달려 있는 차를 몰고서 생전 모르는 파리의 길을 찾아 간다 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물어 물어 밤늦게 회장님 댁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참 반갑게 맞이해 주시더군요. 저녁 늦게 찾아 갔는데 밤늦게 회장님 사모님께서 끓여주시던 김치 찌개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음식을 잘 접하지 못하는데 가끔 해외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먹으면 어찌 그리 반갑고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두분 모두 새해에도 건강 하시길 바랍니다.

 

1225일 성탄절 밤을 정신 없이 길 찾느라고 보내 파리의 야경을 그 당시에는 제대로 구경을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유명한 에펠탑도 한번 보고 가야지 하는 엄두도 못 내었던 것 같습니다.

에펠탑은 나중에 아이들이랑 함께 방문해 보았습니다만ㅎㅎ

 

그 후에 가끔 파리를 방문하면 차를 가지고 파리 시내를 멋모르고 뛰어 들었던 옛날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다음날, 파리에서 스페인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호텔에서 지도를 펼쳐 놓고 도상연습을 했습니다만 실제로 파리 시내에서 스페인쪽으로 빠지는 고속도로를 찾아 빠져 나가기가 참 힘들더군요.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 까지는 1,300km 15시간여의 여정으로 오늘 달려야 합니다.

파리에서 오를레앙을 거쳐 보르도를 따라 길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 오는데 12월의 프랑스는 당시에 비가 참 많이 오더군요. 그래도 다행이 고속도로 상황이 좋아서 아무 무리 없이 잘 달렸습니다. 프랑스 국경선과 스페인 국경선은 우리나라 비무장 지대 철책처럼 분단의 장벽이 있는게 아니더군요. 단지 톨케이트 빠져 나오면서 톨게이트 비용만 내면 되더군요. 차이는 당시엔 유로 통화가 없던 때라 영국 구간은 영국 파운드로, 프랑스 구간은 프랑으로 톨게이트 비용 내고 스페인 쪽으로 넘어 오면 스페인 구간은 페세타로 도로 사용료를 지불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톨게이트를 지날 때 마다 차량 핸들이 오른쪽에 있는 관계로 매 톨게이트 마다 요금을 지불하거나 티켓을 꺼낼 때마다 차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돌아가서 일일이 요금 내고 티켓 을 뽑곤 했습니다. ㅎㅎ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도로 사정은 아주 양호합니다.

단지 스페인 국경지대에 피레네 산맥이 있습니다. 이 산맥 지역의 고속도로만 산악 지형 때문에 약간 구불구불 한 구간이 일부 있습니다만 이 지역을 벗어 나면 역시 곧게 뻗은 고속도로가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로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마드리드 역시 파리와 마찬가지로 크리마스 연휴로 온통 휘황 찬란 합니다.

다음 날 마드리드 광장 및 시내를 간단히 둘러 보고 바로 차를 몰아 알제시라스 까지 가야 합니다. 700km 8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마드리드에서 코르도바, 세비야,카디즈를 거쳐 스페인의 최남단 알제시라스에 도착 하니 오후가 다 되었습니다.

 

알제시라스에서 모로코 북부 탄제까지 는 페리 보트를 타고 갑니다.

지부로울터 해협 14km 1시간 30여분 페리 보트를 타고 가면 모로코 입니다.

 

스페인을 들어 서면서부터 브레이크쪽에 이상이 있다는 싸인이 들어오더군요.

차가 너무 혹사 당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무시하고 알제시라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알제시라는 해안 지역이라 시내 길이 경사진곳이 많습니다.

좀 한적한 길을 내리막길을 가는데 커브길인데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브레이크가 잘 듣지를 않더군요. 커브를 틀지 못하고 그냥 앞으로 쳐박히다시피 내려 앉았습니다.

당시 앞쪽이 약간 낮은 공터라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그 곳이 절벽길이나 해얀 길이었으면 어떡하였나 하는 생각에 지금도 가끔 꿈속에 떠오르곤 하는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니다.

빨리 가는게 능사가 아니지요.

무조건 차부터 다시 점검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연휴라 지정 정비소가 문을 여는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타고 가던 차량이 BMW였는데 전 세계 어느 도시에 지정 차랑 정비소가 있더군요.  그래서 좋은 차를 타야 하는가 봅니다.

알제시라스에도 지정 정비소가 있어서 찾아 갔더니 마침 문을 열고 영업을 하더군요.

브레이크쪽이랑 그외  몇군데 정비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페리 티켓을 구매 하는데 당시 연말 연휴라 엄청난 차량들이 부두에 대기 하고 있더군요.  요즘에는 페리보트 운영을 여러 선사에서 자주 하지만 당시에는 몇대 운항을 하지 않았을 때 였습니다. 그리고 질서 요원들도 없어서 그냥 차량 진입 하는 대로 부두로 들여 보내 더군요.

 

그러다가 그만 부두 중간에서 묶여 버렸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고 부두에서 하룻밤을 꼬박 차 안에서 새우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앞뒤로 차량들이 막혀 있어 오도 가도 못하고, 차를 나두고 그냥 나올 수도 없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잤던 기억이 있습니다.

페리보트만 타면 바로 모로코 집으로 갈수 있는데 배를 못타니 하는 수 없는 거지요.

그 당시는 젊었을 때라  혼자서도 여행을 자주 다녔었습니다만 완전히 생고생을 많이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첫배 조차도 못탈 정도로 제 앞쪽으로도 차가 많이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3번째 페리보트를 겨우 탈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모로코에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로코에 집이 있어서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ㅎㅎ

탄제에서 카사블랑카 까지는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려서 4시간이면 주파 합니다만 당시에는 왕복 2차선 길이라 500km의 거리를 거의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하는 루트 였습니다.

그래도 밤늦게 카사블랑카에 잘 도착 하였습니다. (도시별 세부 사항은 나중에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장장 3,000km가 넘는, 34일간의 유럽 대륙 종주는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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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해안(Costa del sol)

힘들게 여권 심사를 마치고 밤 늦게 토레 몰리노스로 출발 했습니다.
이 길을 낮에 달려야 하는데 한밤중에 달려 깜깜하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정말 아쉬웠습니다.  그 유명한 
코스타 델 솔 인데 말입니다.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은 '태양의 해안'이라고 번역이 되겠군요. 스페인 남부 지중해 해안선을 따라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300여 Km의 해안 지역으로 깨끗한 모래사장을 애무하는 새하얀 파도가  눈이 시리게 파란 지중해의 푸른 빛깔과 어울려져 끝없이 이어지는 곳입니다. 특히 유럽 겨울은 대체로 흐리고 싸늘하지만, 코스타 델 솔 지역은 겨울에도 쾌청할 뿐만 아니라 1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는 평균기온이 섭씨 22도로 겨울에도 일광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유럽인에게 인기가 높은 휴양지로 꼽힙니다.

스페인 남부 지역을 안달루시아 라고 합니다. 아랍어로 "스페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모로코와 유럽 대륙을 연결하는 안달루시아는 이슬람문화를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 시켰던 아랍인들이 10세기경 지배하던 지역으로  
스페인속에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이루어낸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건축물들이 동일 건물내에  이슬람
사원과 기독교 성당이 공존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등 다른 문화를 파괴하지 않고 포용하여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화합과 공존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지역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지역을 여행하시게 되면 유럽과 이슬람의 문화를 비교를 해가면서 여행을 만끽하실수 있는 묘미가 있을것입니다.


가는 길에 먼저 마베야(marbella) 부터 들르기로 했습니다.(스페인 사람들은 마베야라고 합니다) 밤늦게 도착하여 호텔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마베야는  1
950년대 후반 코스타델솔의 리조트(휴양지)로 개발 되기전까지  관광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가난한 어촌 마을이었으나 . 20세기후반에 들어서 관광객들이 놓치지 않고 들르는 유명 휴양지가 된 곳입니다. 특히  세계 부호들과  유명인사들의 전용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사우디 왕가의 전용 별장도 이곳에 있으며 왕족들이 이곳에 오면 현지 유명 백화점에서  왕실 전용 쇼핑 타임을  별도로 두어  로얄타임을  운영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특히 7~80년대에는 영국과 스페인의 긴장관계로 범죄인도가 이루어지지 않자 영국 갱스터들의 도피처로 범죄자의 해안(costa del crime)으로도 불리게 되었고, 그러한 영향으로 'the business'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도시를 구경하던 중에 한국의 모 여자 가수 한 분도 일행들과 함께 휴가를 즐기시러 오셨더군요. 한국분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어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휴가 즐기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멀리서 목례만 주고 받았습니다.


항구에는 전용 호화 요트들이 줄지어 정박되어 있습니다. 아리따운 미녀 아가씨들이 요트선상에서 파티를 즐기는것 같습니다.

         보트가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며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전에 일찍 시내 구경을 마치고 날씨도 더워지고 해서 아이들이 수영를 하고 싶다고 해서 호텔 수영장으로 모두 내려갔습니다. 수영장에는 많은 가족, 연인들로 붐비더군요.  아이들은 벌써 수영장에 뛰어 들어 가서 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파라솔을 그늘삼아 앉아서 아이들 수영하는걸 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잠시 후에 딸아이가 놀란듯이 뛰어와서 자기 엄마에게 귓속말로 뭐라고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수영을 더해도 되느냐고 물어 보더군요. 아이 엄마는 조그만 더 놀다가 가자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딸아이는 다시 수영장으로 들어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하더냐고 아이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딸아이가 엄마에게만  귓속말로 이야기 한것은 수영장안에 할머니 한분이 팬티만 입고 수영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빠한테는 들리지 않게 엄마에게만 귓속말로 ,,,,,,, '이게 뭔소리야? 정말이야?'
나는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더 더욱 난처한 상황이 벌어 졌습니다. 바로 우리가 앉아있는 파라솔 우측 정면으로 아가씨 5명이 일광욕을 즐기면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얼굴 등 정면이 햇볓에 태워지자 한명 두명 일어나더니 위에 걸치고 있던 잠자리 날개를 벗어 버리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는 반라의 상태로 한참동안 앉아서 선텐 오일을 바르고 있는게 아닙니까? 그리고는  엎드려서 등쪽을 태우는것입니다. 참 난감하더군요.  수영장에는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많았고 또한 연인들끼리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만 전혀 개의치를 않더군요. 자유 분방하다고 할까, 아님 문화가 그런 것인지 저로서는 참으로 당혹스럽더군요. 아들녀석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서둘러서 자리를 뜨기로 했습니다. 배도 고프고 해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가자는 핑계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곳에서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에 점심을 먹고나서 토레몰리노스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주변에 식당을 찾던중에 우리 한국분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 갔습니다.
늦은 점심이라 배가 출출하던 차였습니다. 

사장님께서도 한국사람이 오랜만에 왔다고 하면서 참 친절하게 잘해주셨습니다.

일본식 초밥집인데 특별히 메뉴에도 없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거기다가 따로 드시는 김치까지 내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너무 김치가 맛있어서 5 접시 이상 먹었습니다.,,아마 사장님 일주일 김치 저희가 다먹었지 싶네요 ㅎㅎ -정말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마베야 하면 친절한 사장님 음식 솜씨와 자유 분방한 반라의 아가씨들이 떠 오릅니다.ㅎㅎ


점심을 마치고 토레몰리노스로 출발 했습니다,
토레몰리노스는 친구의 여름 별장 비치 하우스가 있는곳입니다.
비치하우스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들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토레몰리노스는 수백년동안 말라가 시민들의 휴양지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유명세에 따라 지금은 다양한 리조트 시설이 들어서 있고 주말이면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지만 사설 전용 해변은 아직도 깨끗하고 푸른 장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특히 겨울이 되면 많은 유럽인들이 추위를 피해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다고 합니다.
 

시내에 있는 조각상입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조각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고향이 50km떨어진 말라가 이거든요 (말라가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해보겠습니다, 피카소 생가, 피카소 박물관, 대성당등등 말라가도 볼거리가 많더군요.)

시원한 분수대가 8월의 한낯 더위를 식혀 줍니다.
 
8월의 한낯에 스페인은 12시무터 3시까지 시아스타 타임이 있더군요. 날씨가 더워서 거의 4-5시경에야 가게들도 열고 사람들도 나와 다니고 하더군요.

 새벽 비치모습

전용 수영장엔 모니터 아가씨가 아이들을 돌봐 줍니다. 수영도 가르쳐주고 게임도 하면서 함께 아이들을 살펴 줍니다

한낮의 비치 입니다.


오른쪽 상단 방항이 말라가 방향입니다.(위)

지중해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하늘빛보다 더 곱습니다.
바다쪽으로 쭉 나가면 모로코에 닿을수 있습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슆지 않습니다.

                         참 깨끗하지요.
                          이 해변에 누워 지중해 햇살을 만끽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올리부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산산히 불어오는 바닷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잔잔한 파도의 여름 이야기를 들으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미녀 아가씨가 참 편안해 보입니다.(하)




사랑하는 가족,연인과 함께 시원한 여름을 즐길수 있는 지중해 태양의 해변, 코스타 델 솔을 여러분은 한번 가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 따로 지중해 해변 휴양지 가시지 않으셔도 될것 같습니다.ㅎㅎ


한가지 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혹시 이곳에 가시면 "뷔페식당"이 몇군데 있습니다. 아주 음식도 좋고 저렴하고 입맛에 맞추어 골라 먹을수 있고 음식도 맘껏  배불리 먹을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는데 8월의 지중해 해변을 만끽해보시면서 올 여름 바캉스에서 있었던 일들, 추억들 유추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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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를 보니 한국의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했군요.
감기가 극성을 부리는데 이웃분들 모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날씨가 살쌀해지는데 잠시 이번 여름 휴가 사연을 사진 몇장과 함께 올려 봅니다.
추위로 움츠러드는 기분을 잠시나마 지중해의 여름바다를 만끽하시면서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름 휴가를 가면서 일어난 에피소드를 이번 포스팅에서는 말씀드립니다.

카사블랑카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4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가면 대서양과 지중해를 동시에 끼고 있는 모로코 북서단의 도시 탄제(Tanger)에 도착 합니다. 탄제는 2012년 해양 엑스포 개최를 위해 여수와 경합을 벌였던 도시로서 여러분들은 기억 하실 것입니다. 2007년 11월2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여수가 모로코 탄제와 피를 말린 접전 끝에 2012년 세계해양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되었지요.

이 때 모로코 방송에서도 실시간으로 유치 뉴스를 방송해주었는데 이쪽 친구들이  저에게 물어 보곤 했지요. 어디를 응원하냐고. 여수냐 탄제냐 ! ㅎㅎ


엑스포(세계박람회)는 영어 exposition의 줄임말이다. 전시회와 설명회를 뜻한다.

세계박람회기구(BIE) 협약 1조에 따르면 '엑스포란 인류의 노력으로 성취된 발전의 모습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일반대중의 계몽을 그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전시라고 돼 있다'


엑스포는 영국의 알바르공에 의해 최초로 창시됐다.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개최국의 권위와 업적을 과시하는 세계 3대 행사로 불린다.

1851년 런던에서 최초로 열린 엑스포는 25개국이 참가했다. 이후 파리(1867년), 필라델피아(1876년), 샌프란시스코(1915년), 오사카(1970년), 벤쿠버(1986년)등이 엑스포와 함께 성장했다.

엑스포는 주최국이나 주최 도시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개최하기도 하며, 국가경제와 지역 경제 발전의 계기로 사용된다.


탄제는 모로코 북부의 바다로부터의 관문으로서 스페인의 남부 알제시라스와 14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 휴가는 차를 가지고 직접 운전해서 스페인 남부, 대표적인 지중해 휴양 도시인 토레몰리노스를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은 파블로 피카소의 고향인 말라가에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탄제에 도착한후 탄제에 있는 현지 모로코 친구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이 친구는 스페인 말라가에 사업체를 운영하는 친구로서 탄제와 말라가를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입니다.  친구와 함께 아침 식사를 겸하며 말라가에 대한 정보를 들었습니다. 휴가차 가는거니까 "말라가" 보다는 "토레몰리노스"가 해변 휴양지로는 가장 좋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친구는 자기 별장이 거기 있으니 별장  열쇠를 줄테이니 거기서 숙박을 하라고 하던군요.
좋은 친구 둔 덕분에 지중해 휴양지 별장에 서 휴가를 잘 지낼수 있었습니다.  

늦은 아침식사를 함께 마치고 탄제항에가서 알제시라스 가는 페리보트 티켓까지 끊어 주더군요. (200유로 가까이 함,차량,4인 가족해서) 금액 많고 적고를  떠나서 낯선곳에서 도움을 받는 다는 것은 참으로 고맙지요. 친구 덕 톡톡히 보았습니다.

티켓을 가지고 차를 몰아 항구에 들어 선 시간이 11시 30분, 그런데 여름 휴가철 성수기라 항구 계류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차들이 대기 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오후 6시가 되어서야  차를 페리 보트에 태울 수가 있었습니다.
저 멀리 바다에서 들어오는 페리 보트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드디어 출발 !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출발 했습니다. 
탄제항에서 출발해서 알제시라스에 도착하는데 1시간 반정도 소요 됩니다.

스페인은 모로코보다 1시간이 빠릅니다. 도착시간 8시반, 차량들이 배에서 빠져나가고 여권 심사를 하는곳에서 도착 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발생 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유럽국가들과 대부분 비자면제 협정이 되어 있지요. 물론 스페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등 대도시 국제공항에서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출입국이 많아서 괜찮은데 알제시라스는 스페인 가장 남쪽 지방에 조그마한 해안 도시입니다. 

그런데 한국 여권소지자가 가족을 데리고 모로코 차량번호가 달린 차를 타고 한밤중에 국경을 넘어가는게 흔치 않은 경우이지요. 시간은 늦어 토레몰리노스까지 갈려면 100km정도를 한밤중에 그것도 초행길에 가야 하는데 여권 심사한다고 시간만 잡아먹어서 걱정이 되더군요.

여권 심사한다고 여권을 제시했더니 한참을 확인하더니 차를 한쪽으로 빼고 기다리라고 하던군요.그러더니 여권들을 가지고 본부 건물이 있는곳으로 가버리는게 아닙니까?  황당했습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그냥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나쁜 시키들, 속으로 욕이 절로 나오더군요.


1시간여 지나서야 드디어 여권에 패스한다고 도장 꽝광 박더군요, 도대체 왜 그리 시간이 소요된거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심사관 왈, 대한민국의 영문명이 ROK(Republic of Korea)인데 이것을 북한( North Korea)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영문이름은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지요.

북한이면 비자 면제 협정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북한이 핵문제로 월드 뉴스에 계속 나오고 미국 여기자 억류등으로 8월 4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억류중인 여기자들을 석방하는 탑 뉴스(top news)로 북한 관련 소식이 활발하던 때였던 때라 지방 소도시에 근무하는 심사관이 순간적으로 혼동을 한 것 같았습니다. 

남한은 South Korea로 알고 있는데  Republic of Korea로 되어 있어서 북한 여권으로 착각했다는것입니다. 너무 황당하고 씁쓸하더군요. 

분단국가의 아픔을 휴가가는 우리 가족이 당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통일이 되어야 겠습니다. 예전에 중동이나 아프라카 여러나라를 다녀 보다가 보면 북한과 남한을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그것도 스페인에서 아직까지 이런 오해가 있는것인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그래도 그렇치 두 나라를 구분하지 못하다니,,,시간을 지연한 심사관에게 짜증이 나더군요.  그러나 여권받아 들고 토레몰리노스로 가는 길 내내 심사를 지연한 심사관에 대한 짜증보다도 아직까지도 분단의 굴레를 훌훌 벗어 던지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막혀있는 남북한의 꼬라지를 생각하니 불쾌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휴가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일을 더 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도 하루 빨리 통일을 해야 겠습니다. 

휴가 기분도 날라가버려 마음을 좀 정리해야 겠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토레몰리노스의 시원한 지중해 해변 풍광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기대해 주세요 ^^)
 
괜찮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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