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아프리카에도 스케이트 장이 있다고 이전의 포스팅에서 말씀드렸지요.

월드 챔피언 김연아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었지요.

스키장이 있는 우케미단 정상

역시 아프리카에 스키장도 있습니다. 오늘은 스키장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이나 유럽처럼  리조트 시설이 현대화된 설비를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천연의 자연 조건을 이용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만끽 할수 있는 곳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아틀라스의 스키장, 우케미단은 그래서 신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리이스 신화의 아틀라스 신이 천형을 받아 지구를 들어 메고 있는 곳, 아틀라스 산은 북아프리카의 최고봉 인 투부칼(4,167m), 이미 앞전의 포스팅에 말씀 드렸지요. 이 아틀라스 신의 어깨쯤에 해당하는 곳이 우케미단 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아틀라스 신의 어깨에서 스키를 즐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 스키장이 있는 우케미단은 해발 3,257m고도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스키장입니다. 가히 신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마라케시 에서 남쪽으로 74㎞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높은 산비탈에는 향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위로 고산 목초지가 발달해 있으며 낮은 산비탈에서는 방목이 널리 행해져 왔습니다. 이 산 중턱에는 베르베르족의 마을들이 여전히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서쪽의 사하라로부터 불어오는 뜨겁고 건조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한여름을 제외하고는 산정상 쪽에는 새하얀 눈 모자를 항상  쓰고 있어서 유럽에서, 혹은 모로코 현지인들 사이에  겨울철 스키장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한여름인6월부터-10월까지는  아틀라스를 트랙킹 하는데 아주 적당한 날씨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등산마니아들은 이 시기에 트랙킹을 즐기지요.

그러나 10월 중순 부터는 거센 눈보라가 빈발하기 때문에 정상 등정은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트랙킹보다는 스키 마니아들이 스키를 즐기러 많이 방문을 합니다. 

 정상에는 있는 스키장은 아주 경사가 심합니다. 전문가 코스인 것 같습니다.

일반인들은 완만한 구릉에에서 스키를 즐기고 아주 잘타는 전문가 수준의 스키 마니아들은 자유롭게  스피드를 만끽하며 탑니다. 내려갈때는 좋은데 올라갈때는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되지요.세상의 이치가 그러고 보면 참 공평합니다.


초보자들도 쉽게 스키를 즐길수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잘들 넘어지면서도 재미있게 탑니다. 등성이쪽으로 민박집들이 보입니다.

 



호텔입니다
. 호텔 모습이 참 이채롭습니다.
피리미드 모습이지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지붕 모양이 경사가 심하게 지어 져 있습니다.
다른 모로코 전통 건물들은 거의대부분 사각형 지붕이지요.

       성수기에 가면 거의 방을 구하지 못합니다. 5성급 호텔인데도 만원입니다. 주변에 민박이나 소규모 호텔들이 있습니다.  


호텔안에서 본 바깥 전경입니다. 스키타고 들어와서 간단히 수영장에서 몸을 풀기도 합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좀 거칠어 보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풍경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천연 자연에 가까운 스키장도 개발의 바람에 비켜나지를 못할 모양입니다.
두바이 자본이(EMAAR) 들어와 리프트 설비및 스키장 시설등의 인프라를  새롭게 구축할 예정입니다. 거기에다가 11개 의 고급호텔 위락 시설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할  18홀 규모의 골프장도 건설 할 계획으로 있다고 합니다.  편리함과 상업성이 어울어져 천연의 자연 스키장도 그 아름다움을 놓치게 될것 같아 아쉽니다.

 

별장입니다.벽난로 피워놓고 언몸을 녹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 하면 참 좋겠지요.

대피소겸 한 겨울 시즌을 지내는 돌담집입니다. 성냥곽 같지요.



드높은 창공을 날아가는 독수리 가족입니다. 드높은 겨울 설산에도 먹을것이 있나 봅니다. 건강한 자연의 질서가  느껴집니다.

 

베르베르 마을 입니다. 척박해보이는 산중턱에서도 계단식 밭을 일구어 살아가고 있네요.


선사시대 암벽화입니다. 당나귀,낙타,망치등 여러가지 암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것으로보아 이곳에 인류가 거주한 것이 선사시대 이전부터라고 볼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우케미단 정상은 1월에서 2월 사이에는 엄청 나게 많은 눈으로 덮혀 있습니다.  마라케시에서 74km떨어여 있으며 택시나 일반 승용차로 가면 2시간 정도 소요 됩니다. 어느나라 산이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험하지요. 특히 아틀라스 산을 올라 가는 길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왕복 2차선,어떤 곳은 1차선의 도로폭밖에 되지 않습니다. 차창밖은 천애의 절벽 낭떠러지, 오금이 저릴 지경입니다. 그래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자연 경관은 잠시나마 낭떠러지의 무서움을 잊게 해주지요.

 


눈이 많이 오는 한겨울에는 2,600 m의 낮은 골짜기 등성이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습니다만 낮은 구릉지에 눈이 녹아 없어지는 시기에는 3,250m의 정상까지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스키 리프트입니다.

올라갈때는 고도를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3,257m정상에서 산아래쪽을 향해  내려 올때는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이 스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은 산 능선을 따라 산 정상을 보고 올라가기 때문에 고도감 을 느끼지 못합니다만 내려올 때는 산 아래쪽을 보고 내려 오기 때문에 3,000여 미터 고도에서 마치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느낌이 듭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타는데 주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사하라에 있는 스키장답게 스키를 즐기고 내려와서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수도 있는 날씨입니다. 호텔에있는 실내 수영장의 물은 따뜻하게 데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수영을 할수 있지요.

그러나 산에서 내려오면 마라케시 시내에 있는 야외 호텔 수영장에서는 실제로 야외에서 수영을 즐길수 있습니다.


사하라에서 낙타를 타고 가서 오아시스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밤하늘의 찬란한 별빛들과 친해질수 가 있지요. 그후에 바로 아틀라스 산을 넘어 우케미단에서는 하얀 눈밭위에서 설원을 가르는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길수 있고 마라케시 시내에서는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길수 있는곳 , 그곳이 바로 모로코 입니다.  여러분을 모로코로 초대합니다.(이러고 보니 꼭 모로코 관광청 홍보 카피 같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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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나라

이전에 블로그에 올린 "사막의 오아시스는 왜 붉은 도시 가 되었을까?" 에서 그냥 이름만 명기하고 넘어가서 좀 아쉬운 마음에 이번에 여기에 올렸습니다.

12세기 물레이 압달라흐만 왕이 왕비를 위해 세운 별궁입니다. 하얀 만년설이 덮힌 아틀라스 산맥 30km 앞에 위치하며 아틀라스 산맥에서 눈녹은 물을 지하 수로를 통해 인공 호수에 저장하면서 주변 올리부 농장과 과수원에 물을 공급 하는 관계용 인공 호수겸 별장입니다, 아틀라스 산맥을 배경삼아 붉은 황톳빛 별궁이 풍부한 물이 고인 인공호수에 비쳐 절경을 이룹니다.

위 사진의 배경이 아틀라스 산맥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틀라스 산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아프리카에 아주 높은 산이 많이 있는 줄 아시나요?


탄자니아 북동부와  케냐 접경지대에 자리 잡은 킬리만자로스와힐리어로번쩍이는 산이라는 뜻을 지니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해발 5,895( 키보봉)입니다.

투부칼 정상(이곳이 아틀라스 신의 머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북서부에서 가장 높은 산은 아틀라스
길이 2,000km. 최고봉(투브칼) 4,165 m로 아주 높은 산입니다. 우리나라 백두산(2,750m)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설악산(1,708m)에 비교하면 참 높지요.
                  투부칼 정상(두부를 칼로 썰어 놓은것 같기도..ㅎㅎ)

최고봉인 정상 투브칼(4,165m)을 주봉으로 해발고도 4,000m 급 이상이 3개 이상에 이르는 등 평균 고도 해발 3,300m에 이르는  대()아틀라스가 중앙에 위치하며 그 북쪽에 중()아틀라스, 남쪽에 안티아틀라스라고 하는 소()아틀라스 등 세 산맥을 주체로 해서 그 남북으로 소산맥들이 이어진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이스 신화의 거인 아틀라스가 왜 모로코에 있을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의 신 
아틀라스(Atlas)는 천계를 어지럽혀 그 죄로  제우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의 저주를 받아 세상의 끝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요.

그래서 마치 거인의 신 아틀라스가 마치 하늘을 떠 받치는것 처럼 우뚝 솟아 있는 장엄한 산이 모로코에 있는 아틀라스 산입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고고학자인 Peter James <The Sunken Kingdom: The Atlantis Mistery Solved>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참고로 이책은 영국의 각종 평론지로부터 극찬을 받은 수작이다.)

 

아주 먼 옛날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미스테리는 근 2,400년 동안 학자와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다.  그는 <티매우스와 크리티아스 Timaeus and Critias>라는 저서에서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재했으며 대지진과 홍수의 영향으로 하룻밤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틀란티스는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해협)의 서쪽에 있던 섬으로서, 이집트문명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으며 대략 10,000 전쯤에 찬란하게 번창하였는데 당시의 그리스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출처:
http://web2.kwangju.ac.kr/~jychoe/lecture/atlantis.htm )



 위 참고 자료에서 보다시피 전설의 도시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모로코 북서부 해안지역입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 지역을 ‘아틀라스의 향토’라고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서양(atlantic ocean)과 아틀라스 산(Atlas Mt)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틀라스는 이아페토스클리메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에피메테우스의 형제이며 티탄신족()의 한 사람이다. 그 일족이 제우스와 싸워 패하자,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어깨로 천공()을 떠받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페르세우스가 괴물 고르곤을 퇴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를 찾아가 잠자리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 고르곤의 죽은 머리를 내보였는데 그것을 본 아틀라스는 놀라서 돌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하는데, 대서양(Atlantic Ocean:아틀라스의 바다)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


       산중턱에 베르베르 마을(계단식 밭이 안타깝게 달려 있다)

아틀라스 산맥이 지중해에서 남쪽 사하라까지 쭉 뻗어 있어 모로코의 등 줄기같은 역활을 하며 모로코를 중앙으로 갈라놓아  내륙쪽은 사하라 사막입니다. 그래서 사하라 사막으로 부터 불어 오는 사막의 열풍을 병풍처럼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고  바다 쪽으로는 녹색이 많은 농경지 가 가능해서  대부분의 마을이나 큰 도시들이 지중해와 대서양 쪽 지역에서 번성하게 된것 같습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도시들도 대서양 연안지역쪽, 아틀라스 서쪽에 위치해서 발달해 있습니다.

여기까지 아틀라스 산맥이 모로코에 있게는 유래를 짚어 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은  "그리이스 신화의 거인 아틀라스 의 어깨에 있는  스키장" (가제) 으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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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white house) 이 카사블랑카 ?

 

카사블랑카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어 아이디를 카사블랑카로 했고 신제품 올리브 비누도 카사블랑카브랜드로 출시를 했습니다.

 

그래서 카사블랑카에 살면서 도시 이름을 왜 카사블랑카라고 했을까?
 
의문을 가져 보았습니다. 이 기회에 간단히 카사블랑카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 , "하얀집" 아랍어, دارالبيضاء다를베이다, 영어로 white house, 한마디로 백악관이지요)
 
대서양에 위치한 모로코의 최대 도시 입니다.. 위도는 33°32N 7°35W.로 우리나라와 위도는 비슷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있습니다만 지중해성 기후라 평균 기온이 겨울에는 섭씨 15, 여름에는 섭씨 24도로 1년 내내 쾌적한 기후를 자랑 합니다  때문에 여름이면 이곳의 해안은 북아프리카의 밝은 햇빛과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푸른빛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 따사로운 햇살을 벗삼아 한가로이 낚시질하는 사람들, 푸른 야자수가 어우러진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휴양객 들로 인산 인해를 이룹니다.


2005 9월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카사블랑카"의 인구는 385만 명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2009년 현재는 500만명이 넘을 걸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로코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그 중에 저희 가족도 인구 센서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ㅎㅎ

해변의 모습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모로코의 주요 항구 도시이며 거의 대부분의 해상운송의 화물들이 카사블랑카 항에서 하역되고 있을 정도로 가장 중요한 상업 도시 입니다. 아프리카 전체 대륙에 있어 6번째로 큰 도시이며(5개 큰 도시는 어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로코의 비지니스의 핵심 도시이기 때문에 모로코의 경제 수도로서 중앙은행 및 기타 모든 은행의 본점들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왕립 모로코 해군의 제1해군기지이기도 합니다. 행정 및 정치 수도로는 북쪽으로 90km정도 떨어져 있는 라바트가 국가의 수도입니다.

카사블랑카는 모로코에 있는 세계 유수의 다국적기업들을 유치하고 있고 주요 산업 시설들을 유치하고 있는 손꼽히는 경제 허브 도시입니다.

역사적으로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날 카사블랑카 지역은 적어도 7세기 까지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이  앙파(ANFA HILL) 지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앙파 지역은 구릉지 형태의 작은 산이라기 보다 언덕 정도 라고 해야 맞을 듯 싶습니다.  이곳이 카사블랑카의 시발점인 곳 이지요. 지금은 고급, 대형 빌라들이 있고 왕궁도 있는 지역입니다.

               멀리 보이는 하늘과 맞닿아 있는곳이 앙파힐, 오른쪽 너머가 대서양 바다가 보입니다.

 

앙파 언덕을 오르면, 대서양이 펼쳐져 그 아름다움이 각별하여 영화에서도 잘 알려진 풍경이며 점점이 이어지는 별장들은 거대한 숲처럼 푸르고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언덕 정상에 우뚝 솟아있는 앙파호텔은 1943년에 카사블랑카 회의의 회의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앙파힐

그러나  베르베르 원주민들은 1068알모라비드 왕조에 의해 정복 될 때 까지 평화롭게 앙파 지역에서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지요..

14세기에는  마리니드 왕조에 점령당한 후 부터 앙파는 항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15세기 초기, 이 지역은 해적들을 위한 안전한 은신처 항구로서 알려져 많은 해적들이 활동을 하며 포르투갈의 해상무역을 위협하고 심지어는 포르투갈 연안 마을까지 해적들에 의해 침탈당하자 1468년 포르투갈은 군대를 보내 해적의 본거지를 파괴하기에 이릅니다.

그후 포르투갈은 1515 폐허가 된 앙파 지역을 이용해 군대 요새를 세우기 시작 했습니다.그러자 자연히 요새주변으로 마을들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곳 주변에서 자라났던 그 마을은 포르투갈어로 "하얀 집"을 뜻하는 "카사블랑카"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것은 앙파 언덕 요새에서 바다를 보면 푸른 바다 위에 하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 지역을 카사블랑카라고 했다고 합니다.

파도 치는 해변

1580년과 1640년 사이, 카사블랑카는 스페인령이 되었다가 다시 포르투갈령이 되기도 하는 등 유럽 식민주의의 영향아래 놓였으나 1755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도시가 대부분 파괴되자 포르투갈은 이 지역을 완전히 단념하게 됩니다..

그 후 앙파 는 이말리 이븐 샤리프의 손자인 술탄 모하마드 압달라(1756 ~ 1790)에 의해 재건되었으며 이 당시 이슬람 사원등이 건립되는 등  도시로서 재건이 되기 시작하여 19세기 유럽과 모로코의 주요  교역 항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이때  아랍어로 الدار البيضاء  다를베이다(하얀 집)과 스페인어로 '카사 블랑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영국에서 직물산업이 왕성하게 일어나자 직물산업에 필요한 원료인 양모의 주요한 공급처가 됨에 따라 카사블랑카는 본격적으로 인구가 늘기 시작 했습니다. (현재에도 모로코의 도시 주변을 나가보면 많은 양의 무리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양모를 수송하기 위해 많은 선박들이 드나들게 됨으로써 많은 유럽인들의 왕래가 많아지자 범죄자들이 많이 발생하게 되지요.

이때 모로코에 범죄인 석방의 대가로 유럽에서 많은 차와 설탕을 모로코 왕실에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국 왕실에서 모로코 왕실에 다기세트를 보내게 되는 것도 이 무렵입니다. (앞의 포스팅 사하라에 차가 전래된 이유에서 설명이 있었지요)

 그 후 카사블랑카는 프랑스의 식민지 치하에 놓이게 되고 이때부터 카사블랑카는 항구로서의 규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후 1921년대에는 주변의 판자촌 등을 재개발 하는 등의 도시정비 정책을 폄으로서 110,000명의 인구를 거느리는 최대의 도시가 되게 됩니다.

 시내 모습 (왼쪽으로 쭉 가면 카사블랑카 항구가 있음)

1907 6, 프랑스가 항구 근처에 있는 묘지를 통과하여 지나가는 경편철도 (便)

를 건설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거주자들은 프랑스인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등 대규모 반 프랑스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프랑스는 자국민의 안전과 치안유지 및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구실로  군대를 상륙시켰고 군대는 수 많은 인명을 살상, 도시 파괴를 자행하면서  카사블랑카를 장악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프랑스는 카사블랑카, 모로코를 식민지화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유엔 광장, 법원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 후 1942년 그 유명한 험프리 보가트,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 가 헐리우드서 상영됩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카사블랑카에서 촬영한 것은 아닙니다.

헐리우드에서 촬영되었지요. 영화에 나오는 배경은 모두 액자 그림으로 처리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주연 배우로 험프리가 아니고 로넬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이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군대에 징집되는 바람에 험프리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영화 '카사블랑카'
1943
년 아카데미 감독상, 각본상,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1943년 워너브라더스 제작. 흑백 영화로 M.커티스가 감독하고 잉그리드 버그먼, 험프리 보가트가 주연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1957년 개봉되었다. 파리가 나치스에 점령되었던 1940년대에 당시 프랑스령 모로코의 카사블랑카를 무대로 한 남자의 옛사랑에 대한 미련과 희생을 그린 미국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번에 한번 기회를 잡아서 다시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반전, 반제국주의 영화가 상영되었듯이 1940-50년대의 카사블랑카는 프랑스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저항의 주요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카사블랑카 회담

카사블랑카는 제2 세계대전 동안 연합군의 중요한 전략적인 항구였으며

유럽지역이 모두 전선화 되자  군사작전을 위하여 모든 미국의 항공기가 작전을 수행하는 지역이었던, 규모가 큰 미국 공군기지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1943년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과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 가 전쟁의 진행 상황을 협의하고 논의한  카사블랑카 회담 이 이곳에서 개최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회담 장소인 호텔이  앙파 언덕 위에 있는 호텔 입니다.


카사블랑카의 랜드마크는 하산 2세 대 사원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하산 대 사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모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이슬람교 사원으로, 지난 1994년 약 7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6000평의 대지 위에 세워진 이 모스크는 25000명이 동시에 예배 볼 수 있는 규모이며, 높이가 200m로 세계 모스크 중 가장 높다. 사원 광장은 10만 명 까지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서 주변에는 도서관 및 부속 건물들을 단장 하고 확장 하는 공사를  아직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건물 전체가 대리석으로 된 사원 외벽에는 단조로움을 피하려는 듯 유약 바른 푸른색 채색타일이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아라비아 무늬로 모자이크되어 있으며 웅장한 외관뿐 아니라 모로코식으로 장식된 사원 내부 장식도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합니다. 내부 장식을 위해 전국의 공예가 3300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는데, 그들의 정성과 노력이 이렇게 웅장하면서도 정교하고 화려한 아라베스크 예술의 극치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여타 중동의 사원이나 다른 건축물들을  치장하는데에도  많은 모로코의 장인들이 활동하고 있는걸로 보아 모로코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예술적 혼은 고대로 부터 이어져오는 유구한 역사와 장인 정신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함께 어울어져 이루어진것 같습니다.

간략하게 카사블랑카의 역사를 오늘은 공부를 했습니다.
좀 지루 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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