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셨지요?

새해를 맞이하여 모로코에서도 오랜만에 떡국을 먹었습니다.

새해에 떡국을 먹어본 것이 수년 만에 처음입니다. 참 감회가 새롭더군요.

새해를 맞이하여 대사님께서 교민들을 초대 해주셨습니다.

주 모로코 한국 대사이신 최 재철 대사님께서는 작년에 부임을 하셔서 아주 정열적이고 활발하게 많은 일을 하시고 계십니다.

http://mar.mofat.go.kr/kor/af/mar/legation/greetings/index.jsp (모로코 대사관 홈피)

   해외에서 보는 태극기는 항상 가슴을 울리게 만듭니다.창공에 휘날리는 태극기도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새해에는 우리나라도 개인적으로 여러분들도 역동적이고 활기찬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새해를 맞이하여 교민들을 특별히 초청하셔서 새해 떡국을 함께 들면서 아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해 주셨습니다.
대사님들이 모두 이렇듯 교민들과 가까이 하시고 일부러 자리를 마련해주시는게 흔치 않은데 새해 들어 초대를 해주시고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참 좋았습니다. 

 새해에 세배를 드려야지요.

아이들이 귀엽게 세배를 드립니다.

아이들도 대사님 내외분도 아주 행복해 하십니다.

 

모두들 즐겁게 떡국을 들면서 한 살 더 먹어감을 반기는 사람도 있었고 한 살 더 먹어감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체로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은 한 살 더 먹는 것을 반기는 것 같고 40십대 이후 부터는 한 살 더 먹는 것을 아쉬워 하는 분위기 입니다.

세월에 장사 없다고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전나무 꼭대기에 새해가 활짝 걸렸습니다.

세월의 연륜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정원수처럼, 한뼘 한뼘 자라 드높은 창공으로 우뚝 치솟아 있는 전나무처럼 어른들은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점심식사로 떡국을 잘 먹고 정원을 들러 봅니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참 조화롭게 배치 되어 있습니다.

마치 어느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소나기가 아주 힘차게 쏟아지더니 오늘은 아주 화창한 날씨입니다.

뉴스에 보니 한국은 아주 춥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모로코는 아주 화창한 날씨가 새해를 반겨 주는 것 같습니다. 

   야구를 하는 모습이 마치 검도의 자세를 취하는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모두들 신이 났습니다.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고 참 천진난만 하게 뛰어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구놀이가 한창입니다.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모처럼 야구 방망이를 잡고 공을 때려 봅니다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포수를 보시는 참사님 폼이 어째 좀 ,,,ㅎㅎㅎ

정원에 공작새 우리가 있어서 잠시 엿보기를 하였습니다
.

7개의 알 중에서 2개만 부화가 되어 암수 한마리씩 새끼가 태어 나서 키우다가

새끼 수컷은 크지 못하고 암컷만 잘 자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이 아빠 공작, 엄마 공작, 새끼 공작(딸 공작) 이렇게 단촐 하게 살고 있습니다.

새끼가 자라서 벌써 엄마 공작 만 합니다.

아빠 공작은 꼬리가 아주 화려하고 길게 자라 있습니다.

활짝 꼬리를 펼쳐 주기를 기다렸습니다만 선뜩 아름다운 꼬리를 보여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조용히 앉아 있는 사진만 찍었습니다.

좁은 우리가 좀 답답해 보였지만 그래도 단란한 가족 공작을 가까이서 보는 아이들은 모두가 신기해 합니다. 

오늘은 새해 첫날,복잡한 생각들 모두 훌훌 던져 버리고 마냥 즐겁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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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방학이고 출장 갔다 오느라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없었던 지라 지난 일요일에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하였습니다.

 

오후 215 시작하는 영화시간에 맞추어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으로 갔습니다.

휴일 오후라 차량들이 많이 밀려 있었습니다.

 

이 영화관은 카사블랑카에 해변에 위치한 영화관으로 50여 개의 스크린이 설치 되어 있는 대형 영화 관입니다 

영화관 근처에서 찍은 영화관 전경입니다. 약간 옆에서 찍어 영화관 정면에 붙어 있는 영화관 이름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차를 영화관 지하 주자창에 파킹을 하고 올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아 연인 끼리,가족 끼리 많이들 나와 있습니다.

 

현대 자동차 홍보 차량이 눈에 뜨입니다.

이곳에서도 우리나라 제품들이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동차,가전 제품 등 여러 제품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바타를 보자고 하더군요. “투일라이트“2012은 이미 엄마와 함께 보았다고 하네요. 아바타 3D 2시 15 상영인데 30분전인데도 모두 매진 되어 버렸다고 하네요 하는 수없이 3 시작하는 2D로 보기로 하였습니다.

티켓을 예매하고 나서 간단히 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영화관 앞에 있는 스낵 식당에 들어 갔습니다. 

식당안 풍경을 찍어 보었습니다.

올리브 오일과 소금,후추, 케첩,겨자등이 가지런히 기본으로 테이블에 놓여 있습니다. 

메뉴 판으로 식탁을 깔아 주네요. 이곳은 대개 불어로 메뉴가 되어 있습니다.

스낵의 종류도 참 많습니다 

제가 시킨 샌드 위치입니다.

닭고기 샌드위치인데 닭고기에 치즈,약간의 야채, 소스. 감자 튀김 이렇게 나옵니다.

 

샌드위치 빵이 너무 큽니다. 25cm는 넘는 대형 샌드위치입니다.

아이들은 빠니니를 시켜서 먹습니다. 빠니니 역시 샌드위치 일종입니다.

 

샌드위치가 너무 커서 제가 절반 정도 먹고 아들에게 먹으라고 주었습니다.

아들이 받아서 잘 먹다가 도중에 그만 앞니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구멍 뚤린 아들의 앞니. 사진 촬영을 거부 하더니 나중에 자진해서 촬영에 임했습니다.

증거를 남겨야지요. ㅎㅎ
 

부러진 이빨을 찾아야 하는데 모두들 웃음보가 먼저 터져 버렸습니다.

이게 웃을 일이 아닌데 말입니다.

 

한참을 부러진 이빨을 찾아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큰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이빨은 몇 개월 전에 아들이 학교에서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앉아 있는데 반 친구들이 자기들 끼리 서로 장난을 치며 놀다가 지우개를 아들 쪽으로 던진 모양입니다. 지우개가 얼굴 정면으로 날라오자 반사신경적으로 얼굴을 숙여 피한다는 게 책상을 들이 받은 모양입니다. 이때 그만 앞니가 부러져 버렸습니다. 학교 양호실에 가서 이빨을 우유 컵에 넣어서 가져와서는 칫과에 가서 붙였던 이빨입니다. 몇 개월을 잘 넘어 가나 싶었는데 단단한 샌드위치 빵을 씹는 바람에 다시 빠져 버렸네요.

 

부러진 이빨을 찾았으면 다시 붙였을 텐데 결국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다음날 칫과에 가서 진찰을 받고 새로운 이빨을 붙이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이빨이 일주일 후에 마련된다고 이빨 모형을 뜬 후에 일주일 후에 다시 칫과 가서 붙이기로 했습니다. 

치아가 빠지거나 부러졌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응급 처치를 해야 할까?

외상을 입어 입술과 잇몸이 다치는 경우 피가 나기 때문에 걱정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침착히 치아가 빠지거나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만약 치아가 탈락했다면 즉시 응급처치를 해 치아를 살릴 수 있다.

치아의 뿌리부분(치근)에는 치근막이라는 막으로 싸여져 있다.

이 막이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치아가 빠져 이물질이 묻었을 경우 식염수나 물을 사용해 30초 이내로 이물질만 살짝 헹궈내야 한다.

이때 손으로 문지르거나 다른 도구를 사용해 씻게 되면 치근막이 손상될 수 있다.

또 치근막은 건조한 상태에 약하기 때문에 구강외에서 30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빠진 치아를 끼워 넣어야한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놀라 조절이 되지 않으면 빨리 치과를 찾는게 상책이다. 치과를 찾아오는 동안 빠진 치아를 삼킬 수 있으므로 입술과 잇몸 사이에 끼워서 오면 삼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만약 우유를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면 우유속에 넣어서 치과에서 치료를 받는 방법도 있다.

치과에 도착하면 치과의사는 치아를 원래 위치에 끼우고 다른 치아와 함께 고정하여 치아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치아가 빠지자마자 원래 있던 골에 끼우면 치근막은 다시 살아난다. 치근이 완전히 자라지 않은 치아는 치아신경이 서서히 살아날 수도 있으니 정기적인 치과 치료와 관리로 치아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

치아 외상 중에도 흔한 것이 치아가 부러지는 경우.

먼저 치관이 부러지면 부러진 조각을 찾아 보관한 뒤 가능한 빨리 치과의사를 찾아 치아를 붙여줘야 한다.

유치의 손상으로도 영구치에 변형이 생길 수 있고, 영구치는 말 그대로 평생 사용해야 하는 치아이므로 외상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켜 혼자서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


영화 보러 왔다가 그만 아들 이빨만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암튼 영화는 보러 가야지요.

팝콘하고 음료수가 빠질수 없지요. 

아바타에 대한 감상평은 여러 이웃분 들이 많이 포스팅 으로 올려 두셨더군요.

CG가 잘된 재미 있는 영화 였습니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이 인디언들을 몰아 내었던 스토리와 비슷하게 전개 되는 것 같던데 영화에서 결국 나비들이 이기는 걸로 나오더군요. 시사 하는 바가 크게 느껴집니다. 

영화가 끝나고 주변에 있는 야경을 몇가지 담아 보았습니다.

영화관 앞 사거리,,,오른쪽으로 쭉 가면 카사블랑카 해변이 나옵니다.
휴일이라 많은 차량들이 해변으로 들어 가고 있습니다.

카사블랑카 해변으로 들어 서면 이런 모습입니다.
오른쪽이 대서양으로 수영장,리조트 시설들이 있습니다.

대서양의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다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연인들의 모습이 많이 뜨이네요.

드넓은 바다가 해를 삼켜 버렸습니다.

새해에도 모든 분들 건안 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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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포스팅에 이어서 2 부를 진행합니다.

최종 오더를 수주 계약을 하고 나서  한시라도 빨리 앙골라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 때 프랑스 회사 부사장이 현지를 지원차 방문을 하고 있었니다. 이 회사의 앙골라의 원유 시추와 다이아몬드 광산채굴 사업을 관장하는 부사장이었습니다. 전직 대사 출신으로 불어,아랍어,영어,포루투갈어 실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저에게 출국을 하지 말라고 하는것입니다. 저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은 마음에 당장 있는 가장 빠른 비행편으로 출국 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부사장께서 항공편은 자기가 다시 조정해서 조속히 출국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협조를 하나 더 해달라고 하더군요.

현지 조달청장이 장군인데 이 사람 내외를 데리고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일종의 로비 여행인데 이때 제가 함께 동행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계약건도 다시 한번 신속한 진행을 부탁도 해야 하고 하니 내가 꼭 동행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 3일 정도 걸린다고 하더군요. 참 난감하더군요. 한시라도 빠져 나가고 싶은데 며칠을 더 있어야 한다니..... 그래서 어차피 우리 계약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함께 동행 하기로 하였습니다.

상투메 프린시페


상투메 프린시페 는 아프리카의 섬나라이며 수도는 상투메 에 있는 상투메(문화어: 산토메)이다.

1471 포르투갈인이 발견하기까지는 무인도였으며, 1483부터 포르투갈 본국으로부터의 유형수와 노예로서의 아프리카인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당시는 서인도 제도에 앞서서 사탕수수플랜테이션 농업이 시도되어 16세기 전반까지 이 섬의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그 중심은 서인도 제도로 옮겨졌으며, 그 대신 이 섬은 앙골라로부터의 노예 무역의 중계 기지가 되었다. 19세기에 노예 무역이 폐지되면서 카카오커피의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어 현재 이 나라의 주산업이 되었다. 1885 베를린 회의에서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승인되었으며, 1951 포르투갈의 해외주가 되었다.. 1974 4 민주화 쿠데타에 의해 성립된 포르투갈 새 정권은 상투메프린시페의 독립을 승인, 같은 해 11 독립 협정에 조인했으며, 1975 7월 12 정식으로 독립을 한 후에도 1979까지 빈번하게 쿠데타 미수사건이 잇따랐고, 1981에는 식량 부족으로 폭동이 발생하였다.

적도 근방의 대서양과 만나며 가봉의 북서쪽 해안에서 3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기도 하다. 두 섬으로 이뤄진 상투메 프린시페는 카메룬 화산지대의 일부이기도 하다.적도가 남쪽 바로 아래를 지나가기도 한다.
열대 기후로서 덥고 습한데 일년 내내 기온이 27 °C 정도이다. 기온은 거의 32도를 넘지 않는다. 밤에는 대개 기온이 낮아서 서늘하다. 평균 강수량은 지역 차가 좀 나는 편이지만 거의 안 내린다고 해도 무방하다. 우기는 10월에서 5월이다. 이 나라는 1975북한과 단독수교하여 왔으나 1988년에는 대한민국과도 공식수교하였다. 주가봉대사관이 공관을 겸임한다

 

다음날 공항으로 함께 데리고 가더니 8인승 자가용 비행기를 타라고 하더군요.

이 회사 부사장 전용 자가용 비행기 입니다. 생전 처음 자가용 비행기를 타 보았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잠시 후에 기장이 저를 부르더니 조종석으로 들어 오라고 하더군요.

조종석에서 내려다보니 바다 위의 섬들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들이 하늘빛과 어울려져서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확트인 시야에 보이는 것이 그간 답답하고 움츠러들었던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더군요.

루완다를 출발해서 50여분을 북쪽으로 비행하니 적도상에 위치한 상투메 라는 작은 섬나라에 도착 했습니다. 기장이 패스포트를 걷어가더니 알아서 간단히 입국 수속을 밟는 동안 우리는 바로 비행기에서 내렸습니다.
이 나라에 대한 비자도 없었는데 어떻게 입국 수속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공항 계기장에는 최고급 메르세데스가 두대 대기 하고 있어서 바로 비행기 트랩을 내려 차에 탑승 했습니다.

 

30여분을 달려 가자 이 회사 부사장 개인별장이라고 하는데 50여개의 방갈로가 각각 독립되어 잘 가꾸어진 조경과 어울려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져 있더군요.

 뒤쪽으로 울창한 적도의 산림이 우거져 있고 앞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대서양의 바다가 바로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위치 해 있습니다.

 사진위에 하얗게 그어진 선이 적도 회귀선입니다.   이 적도 회귀선 을 좌우로 한발씩 올려 놓고 사진들을 많이 찍지요. 적도회귀선을 가랑이 사이에 두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잊지못할 기억입니다.

적도의 날씨는 아주 후덥지근하고 덥습니다.

한 낮에는 가슴이 컥 하고 막힐 정도의 기후입니다.

키를 각각 하나씩 주면서 방갈로를 지정해 줍니다. 방갈로 안은 아주 정갈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고급호텔 수준입니다. 에어컨이 가동되어 밖으로 나가기 싫을 정도로 날씨가 후덥지근합니다.

잠시 땀을 고르고 휴식을 취한 다음 각자에게 정글용 랜드로버 차량 한대씩 제공을 해주더군요.

섬 이곳 저곳을 둘러 보라는 것입니다.

날씨가 후덥지근하였으나 창문이 없는 오픈형 랜드로버를 타고 섬안쪽 해변부터 시작해서 섬의 정상까지 구비 구비 산길을 타고 돌아 올라 가니 정상에서 보는 파노라마 절경이란 참 감탄 스럽더군요.

섬 전체가 커피나무 천지 입니다.

저도 이때 커피나무를 처음 보았습니다. 지천으로 깔린게 커피 나무 더군요.

이곳에서 커피를 수확해서 유럽으로 많이 수출 한다고 하더군요..

 내려 오는 길에 커다란 폭포수가 있어 시원한 물줄기를 보면서 더위를 잠시 식혔습니다.

폭포수 앞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바위의 유래가 재미 있습니다.

 어느 등산가가 이 폭포수 앞을 지나다가 한참을 물줄기를 보고 서 있더라고 하네요.

그래서 옆에 동료가 왜 안가고 그렇게 오랫동안 폭포를 쳐다보고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 등산객 왈, 떨어지는 폭포물이 언제 다 끝나는 지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네요. ㅎㅎ

그 등산객 영원히 서서 폭포수 물이 다 없어질 때 까지 기달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디 가서 폭포수 구경하다가 망부석 되는 일은 없으시길 바랍니다. ㅎㅎ 

열대 야자수 너머로 적도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오늘도 휴식을 취하러 갑니다. 

다음날은 바다 구경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울창한 열대 나무들로 둘러싸인 해변은 참 깨끗하면서도 조용합니다.
수중 탐방도 빼놓을수 없는 구경거리입니다.
다이빙장비를 간단히 챙겨 입고 해변 근처 바닷속을 둘러 봅니다. 유유히 열대어들이 놀라지도 않고 함께 수영을 즐기고 있습니다. 

로비 여행이란게 참 간단히 개인적인 여행과 휴식 차원이 아니더군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함께간 장군의 취향에 맞게 함께 움직이고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여러가지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은 더 이상 언급을 하지는 못합니다만 상상에 맡기겠습니다.ㅎㅎ

이렇게 23일간의 짧은 로비 여행을 마치고 다시 루완다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파리행 비행기를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주 만에 이 전쟁지역을 탈출 할 수 있게 되었 습니다.

그래도 이곳 까지 어렵게 왔는데 그냥 가면 되느냐고 장군께서 일부러 차를 내어 주시던군요.

시장을 한번 들어 보고 필요한 것 있으면 선물로 가져 가라고 하시더군요.

 

시장에는 두명의 중무장한 보디가드를 달고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만 별다른 특산물은 없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아주 상황이 열악하던 시기라 관광객들도 많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념으로 현지에서 목공예품 하나를 골랐더니 선물로  주더군요. 아직까지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남녀 한 쌍이 손을 마주 잡고 만세를 부르는 것 같은 형상입니다. 앞으로 국가의 내정이 안정화 되어서 이 목공예품 처럼 모두가 손을 맞잡고 한 마음으로 분쟁과 파괴가 없는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일주일 일정으로 들어 왔다가 전혀 통신도 잘 안되는 지역에서 2주 동안 묶여 있어서 여러가지로 참 불안스러웠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 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더군요.

 

비행기를 타고 나오면서 다시는 위험지역,분쟁지역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수 만번도 더 했습니다.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불안과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도 당시에는 정말 너무도 위험하고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련한 추억으로 남습니다.
참 열심히 내 젊음 하나 믿고 일에 몰두 했던 때라 후회는 없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무모하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발전하고 또한 치안 역시 좀 더 좋아 진것 같습니다.
2010년 아프리카 대륙 컵 대회(축구대회)를 앙골라에서 개최 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부딪혀 볼 목표가 있었을까요?, 그게 직장일이던 개인적인 일이던, 혹은 사랑이던
 말입니다. 새해에는 좋은 목표들 하나씩 챙겨서 집중해보시는것도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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